artist
파랑
pa rang
  • 천년동안에_캔버스에 유채_130×130cm_2015
    천년동안에_캔버스에 유채_130×130cm_2015
  • 그곳이 막다른 골목이 아니었음을_캔버스에 유채_182×117cm_2015
    그곳이 막다른 골목이 아니었음을_캔버스에 유채_182×117cm_2015
  • 고요히 고요히(DMZ)_캔버스에 유채_112×145cm_2015
    고요히 고요히(DMZ)_캔버스에 유채_112×145cm_2015
  • 장항습지-1_캔버스에 유채_61×73cm_2016
    장항습지-1_캔버스에 유채_61×73cm_2016
  • 장항습지-2_캔버스에 유채_61×73cm_2016
    장항습지-2_캔버스에 유채_61×73cm_2016
  • 그립다_캔버스에 유채_117×91cm_2015
    그립다_캔버스에 유채_117×91cm_2015
  • 이제 우리 헤어질 때가 되었다_캔버스에 유채_100×80cm_2015
    이제 우리 헤어질 때가 되었다_캔버스에 유채_100×80cm_2015
  • 갤러리밈 전시이미지_파랑
    갤러리밈 전시이미지_파랑
  • 갤러리밈 전시이미지_파랑
    갤러리밈 전시이미지_파랑

파랑 pa rang


2004년 동국대학교 서양화과 졸업

개인전
2010 “The border"展 - 스피돔갤러리
2011 외줄타기 展 - 나무그늘 갤러리(강남역점)
2012 한 사람이 아닙니다 展 –갤러리 the K(인사동)
2013 초대 개인전 – 갤러리 각 (인사동)
2014 흔들리다 展 – 이랜드 스페이스
2016 그곳이 막다른 골목이 아니었음을 展 - 갤러리 밈

그룹전
2009 인큐베이터 展- 삼청 영 갤러리(서울)
2010 아우라 갤러리 개관전-아우라갤러리(서울)
2011 NEW wave artist 展 – 두루갤러리(서울)
2012 honored workers 展- 57th 갤러리(서울)
2012 “korea X japan " 展 SYSTEMA 갤러리 ( 오사카. 일본)
2012 SCAF 2012. 서울 아트 페스티발 (서울. 예술의 전당)
2012 AQUA art Miami beach art fair. (미국. 마이애미)
2013 open art canvas night (서울. 언오피셜 프리뷰 갤러리)
2014 맞이, 하다 展 (양평. 소머리국밥 갤러리)
2014 개관 5주년 기념 展 ( 양평 소머리국밥 갤러리)
2014 이마고 展 ( 서울. 인디 아트 홀 공)
2014 일러스트 다시 보다.-일기장에 쓴 얼굴展( 남양주. 서호 미술관)
2014 집을 展 ( 한남대학교. 가정관)
2015 동고동락 展 ( 인디 아트 홀 공)
2015 자라섬 풀빛 미술 페스티발
2015 sobab artfair (소머리국밥 갤러리)
2015 고양 미술 장터
2015 나는 무명 작가다 展 ( 아르코 미술관)
2016 파랑 & 김윤섭 2인전 ( 오월의 종 갤러리)
2016 painters painting (더블 스페이스)



나는 예술을 거창하게 포장하는 것이 싫다.
내가 생각하는 예술은 즉각적이고 단순하며 이성보다는 직감 또는 무의식적 잠재의식에 반응한다고 생각한다. 현대 미술은 난해하고 복잡하고 너무도 현학적이고 철학적이다.
예술 작품이 해석되어야 할 종류의 개체이고, 해석을 통해 비로서 예술 작품이 예술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게 된다고 하지만, 요즘은 그 해석이 작품의 아우라를 앞서는 듯 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자주 전시를 보러 다니지만 마음에 남는 작품이 드물다. 무언가 비슷비슷하거나, 아니면 너무 형식적이거나, 너무 난해하고 어렵다. 사회 시스템을 분석하고 비판하는 작업들이 최근에 많이 보여 진다. 미술 작품을 통해서 자신의 생각을 시각화한다. 물론 좋다. 필요한 작업들이다. 하지만 요즘 들어 예술의 가장 근본 적인 것이 너무 등한시 되는 것은 아닌 가 아쉽다.

미술은 주술에서 비롯되었다. 미술사에 가장 먼저 등장하는 것이 라스코(Lascaux)의 동굴 벽화와 빌렌도르프(Willendorf)의 비너스 일 것이다. 들소 사냥과 관련된 이 동굴 벽화는 주술적 상징이다. 현실에 대한 마음속 이미지를 모방해 현실의 이미지로 바꾸고 그 이미지와의 교감을 통해 현실을 바꾸는 것. 주술은 이러한 관념을 모태로 출발하고, 주술에서 태어난 미술은 이미지를 현실로 바꿔주는 매개장치인 동시에 현실을 바꾸는 부적 같은 것이다. 그러나 모더니즘을 거치면서 미술은 점점 아우라와 주술적 힘를 걷어냈다. 남은 것은 물감이라는 물질적 안료이고, 내용은 사라졌고 형식만이 남았다. 개념 미술은 물질보다 개념이 더 앞서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이미지는 사라지고 텍스트만 남았다.

난 이미지의 힘을 믿는다.
단순히 세계와 자연을 재현하는 이미지가 아닌, 평범한 인간의 능력을 넘어서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여주는 힘이 이미지에 있다고 믿는다. 사진은 오직 사실 만을 기록하고 보여준다. 카메라 렌즈에 잡히지 않는 것은 사진으로 볼 수 가 없다. 내가 회화에 집중하는 까닭이 이것에 있다. 오직 회화만이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작가의 상상력을 더해서 표현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인가를 그린다는 것은 형상을 통해 신성한 무언가와 소통한다는 의미이다. 이미지가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초월적인 부분은 엄밀히 말해 감각적인 요소들로 분석될 수 없으므로 감각을 통해서는 알 수 없는 것이 된다. 그런 이유로 이미지를 이미지일 뿐이라고, 현실과는 무관한 사라져가는 감각에 불과할 뿐이라고 단정 할 수는 없다. 예술적 형상을 그저 가상에 불과 한 것, 진실과는 무관한 것으로 취급할 때 예술은 취미와 즐거움을 주는 도구로 전락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이미지가 본래부터 지니고 있는 상징적 환기력을 소외시키고 있다.

오늘날의 과학적 실증주의는 형상에 대한 지나친 합리적인 태도로 인해 비합리적인 힘을 애써 외면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물질과 형태에 대해 현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즉물적인 감정, 직접 지각한 것이 아니면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쉽게 치부해버리는 태도는 선과 색과 형태들을 마치 아무런 상징성도 지니지 않은 물리적 최소 단위에 불과한 것으로 취급해버리고 말았다. 더구나 인간의 수고를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는 작품들, 기계적 복제를 통해 생산된 물품들이 예술의 이름으로 등장하면서 인간이 형상에 대해 취하는 즉물적인 태도는 이제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상식적인 것이 되었다. 심지어 작가들까지도 이미지 보다는 메시지의 중요성을 더 강조하며, 회화가 지닌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작가는 일정 부분 무당과 같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작품을 통해 다른 이들에게 현현하는 매개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림에 좀 더 원초적이고 본질적이며 본능적인 것들을 표현하고 싶었다.
사회 현상이나 세상 돌아가는 일 등 바깥세상의 일보다는 인간 내적인 면을 들춰내고 끄집어 내 고자 했다. 쉽게 다른 이들에게 드러내지 않는 솔직하고 진실 된 감정들, 그것이 어둡고 기괴하고 아름답지 못한 것일 지라도, 무의식 속에 늘 감추고 억누르고 있어야만 하는 인간의 감정들.. 그것을 끄집어내어 잊고 있던 인간의 또 다른 이면을, 불편한 인간의 본모습들을 대면할 수 있는 작업을 하고자 했던 것 같다.

이제는 인간의 내면에서 잠시 눈을 돌려 자연과 조응하는 작업을 하고자 한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영혼의 움직임, 내면의 비전을 담고 있다. 나는 자연과의 조우를 통해, 보이지 않는 존재의 신비를 드러내는 작업을 시작하려고 한다. 보이지 않는 세계, 그러나 인간의 내면에 깃들여 있는 잠재된 세게, 동시에 한 개인의 내면 속에 있지만 우주 전체가 함께 호흡하는 세계를 드러내고 그 세계를 교감하게 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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