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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전시
미래 감각 Future Sense
  • 박형준
  • 2017.08.16 ~ 2017.09.10
  • 3전시장,4전시장
박형준_나는 나를 선택하지 않았다_I did not choose me_거울,3D프린팅,센서,모터_세로60x가로60x높이80cm_2011 박형준_InsideOut_심박센서,전기자극기,유리벽_퍼포먼스 1시간_2012 박형준_MRI도큐먼트 박형준_떠 다니는 신체_floating body_MRI스캔_비디오 3분_2012-2014 박형준_비어있는 자소상_empty portrait_MRI스캔,아크릴_세로45x가로45x높이45cm_2012-2014 박형준_투과될 수 있는 심장_pearmeable heart_MRI스캔,밀납_세로10.7X가로7.4X높이16.6cm_2012-2014
박형준_사라진 기억, 선명한 기억 a lost memory, a clear memory_ x-ray, LED 조절장치_세로50x가로50x깊이8cm_2017 Gallery4_박형준_전시모습 Gallery3_박형준_전시모습 Gallery3_박형준_전시모습 Gallery3_박형준_전시모습 Gallery3_박형준_전시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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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형준_나는 나를 선택하지 않았다_I did not choose me_거울,3D프린팅,센서,모터_세로60x가로60x높이80cm_2011
    박형준_나는 나를 선택하지 않았다_I did not choose me_거울,3D프린팅,센서,모터_세로60x가로60x높이80cm_2011
  • 박형준_InsideOut_심박센서,전기자극기,유리벽_퍼포먼스 1시간_2012
    박형준_InsideOut_심박센서,전기자극기,유리벽_퍼포먼스 1시간_2012
  • 박형준_MRI도큐먼트
    박형준_MRI도큐먼트
  • 박형준_떠 다니는 신체_floating body_MRI스캔_비디오 3분_2012-2014
    박형준_떠 다니는 신체_floating body_MRI스캔_비디오 3분_2012-2014
  • 박형준_비어있는 자소상_empty portrait_MRI스캔,아크릴_세로45x가로45x높이45cm_2012-2014
    박형준_비어있는 자소상_empty portrait_MRI스캔,아크릴_세로45x가로45x높이45cm_2012-2014
  • 박형준_투과될 수 있는 심장_pearmeable heart_MRI스캔,밀납_세로10.7X가로7.4X높이16.6cm_2012-2014
    박형준_투과될 수 있는 심장_pearmeable heart_MRI스캔,밀납_세로10.7X가로7.4X높이16.6cm_2012-2014
  • 박형준_사라진 기억, 선명한 기억 a lost memory, a clear memory_ x-ray, LED 조절장치_세로50x가로50x깊이8cm_2017
    박형준_사라진 기억, 선명한 기억 a lost memory, a clear memory_ x-ray, LED 조절장치_세로50x가로50x깊이8cm_2017
  • Gallery4_박형준_전시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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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allery3_박형준_전시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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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allery4_박형준_전시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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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준 ParkHyungjun

재독 미디어 아티스트 박형준은 다양한 연구소들과의 협업을 통하여 탈 경계에 대한 고민과 매체 간 융합을 지속적으로 시도하는 작가이다. 2012년 독일 뒤셀도르프 방사선 연구소와 협업을 진행한 바 있고, 2013년 한국기계연구원-나노자연모사연구실 에서 4개월간 상주하며 작업을 하였다. 대전테미예술창작센터의 입주 작가로도 활동하였고, 2015년 독일 쉐핑엔에서 주최하는 <예술-과학-경제> 관련 레지던시에 선발되어 참여한 바 있다. 작가 박형준은 쾰른미디어 예술대학 (KHM)에서 수학하였으며, 그의 작품은 대표적인 미디어 아트 센터 중 하나로 꼽히는 칼스루헤 미디어 아트 센터 (ZKM)에서 전시 및 소장 되었다.


학력
2012 독일 쾰른 미디어 예술 대학 석사
(Academy of media arts, Cologne, Diploma)
2008 독일 할레 조형 예술 대학, 미디어 예술과
(Burg Giebichenstein University of Art and Design, Halle)
2005 대전 충남대학교 예술학부 조소과 학사

개인전
2017 「미래 감각」, 갤러리 밈, 서울
2016 「기계 인간」, 현대갤러리, 대전
2016 「나는 인공물이다」, 미디어극장 아이공 iGong, 서울

단체전
2017 「디지털-아날로그」, FAK, 뮌스터, 독일
2017 「화성에서 온 메세지 – 화학예술 특별초대전」, Space C#, 한국화학연구원, 대전
2015 「Circular Seed」, KWW (Kunst-Wissenschaft-Wirtschaft), 쉐핑엔, 독일
2015 「Strom IV」, Kunsthaus Rhenania, 쾰른, 독일
2015 「신소장품전II」, 대전시립미술관 창작센터, 대전
2014 「프로젝트 대전 2014 : 더 브레인」, 대전시립미술관, 대전
2014 「움츠러 드는 세계, 유목하는 몽상가」, 대전테미예술창작센터, 대전
2014 「여드레」, 빛고을시민회관, 미디어큐브 338, 광주
2014 「흔들리는 경계」, 대전테미예술창작센터, 대전
2013 「공존」, 아티언스 프로젝트, 대전시립미술관 창작센터, 대전
2012 「나는 인공물이다, 학위청구전」, 쾰른 미디어 예술 대학, 쾰른, 독일
2012 「Contemporary Art Ruhr」, 미디어 아트 페어, 에센, 독일
2011 「Vision. Das Sehen」, 바이마르 시립미술관, 바이마르, 독일
2011 「Beyond 3D 페스티벌」, 칼스루헤 미디어 예술 센터, ZKM, 칼스루헤, 독일
2010 「Heavy Matter」, 제16회 국제 전자예술 심포지옴, ISEA RUHR, 도르트문트, 독일

수상
2015 차세대 아티스타, 대전문화재단, 대전
2014 ARKO 공공미술 R&D 프로젝트 선정,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서울
2006 제 5회 필름포럼 소극장전, 독일
(the third prize, 5.Filmforum Selbstgedrehtes Kino-Zazie, Halle, Germany)

레지던시
2015 예술-과학-경제, KWW Stipendium (Kunst-Wissenschaft-Wirtschaft), 쉐핑엔 예술가 마을 재단, 쉐핑엔, 독일
2014 대전테미예술창작센터, 대전문화재단, 대전
2013 아티언스 프로젝트, 한국기계연구원-대전문화재단, 대전

소장
2015 '나는 인공물이다', 대전시립미술관, 대전
2011 '나는 나를 선택하지 않았다', 독일 칼스루헤 미디어 예술 센터,
(ZKM | Zentrum fuer Kunst und Medientechnologie Karlsruhe, Germany)

강연
2014 아티언스 아카데미/포럼, 한국과학기술연합대학원, 대전
2014 첨단과학연수 융합인재교육, 한국과학기술연합대학원, 대전
2014 문화예술, 융복합 시대의 전망과 과제, 대전전통나래관, 대전
2013 대한설비공학회, 카이스트, 대전
2013 제10차 대전문화예술 기획경영 아카데미, 대전문화예술의전당 컨벤션홀, 대전

워크숍
2015 XYZ 3D 프린터 워크숍, 대전테미예술창작센터, 대전
2014 크라잉 워크숍, 대전테미예술창작센터, 대전



혼종화된 예술가의 시각/ 심혜련 (전북대학교 교수)

...하나의 지각이 독점적인 지배를 하고 있는 것은 결코 좋지 않다. 그러므로 시각이 여전히 헤게모니를 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각의 독재에 대한 비판과 공격은 지속적으로 그리고 다양하게 진행되고 있었고, 지금도 그렇다. 지금은 다양한 매체들의 발전으로 인해, 때로는 시각보다는 촉각이 또 때로는 복합지각 등이 중요하게 논의되곤 한다. 사실 복합매체 자체가 복합지각을 전제로 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된 상황 속에서 박형준은 다시 시각에 몰두한다. 그런데 그가 대상을 보는 방식은 모호하다. 모호함의 근원은 그의 시각이 단일한 시각체계가 아니라, 다중적인 시각체계 안에서 움직이기 때문이다. 매체이론가로서 그 누구보다도 시각의 문제에 몰두해온 베른트 슈티글러(Bernd Stiegler)와 마리우스 리멜레(Marius Rimmele)는 시각문화를 분석한 『보는 눈의 여덟 가지 얼굴: 시각과 문화: 당신은 누구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있는가(2015)』라는 책에서, 시각의 여덟 가지 얼굴을 소개하고 있다. 역사적인 눈, 포스트식민주의적인 눈, 매체적인 눈, 이중의 눈, 내면의 눈, 관찰하는 눈, 소비하는 눈 그리고 마지막으로 과학적인 눈으로 구분하여 시각이 갖는 다양한 역사적 문화적 그리고 사회적 측면을 분석한 것이다. 이러한 분석은 매우 재미있다. 오감 중에서 시각, 또 다시 시각을 해체시켜 그것이 가지고 있는 여덟 가지 얼굴을 분석했기 때문이다.
박형준의 작품이 재미있어지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그의 시각은 여덟 가지 얼굴들 중, 전부는 아니더라도, 몇 개의 얼굴들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그의 시각에는 매체적인 눈, 관찰하는 눈 그리고 과학적인 눈 등등이 중첩되어 있다. 이러한 여러 가지 눈들이 상호작용한 결과를 그는 자기만의 독특한 ‘예술가의 눈’으로 드러내며, 그 눈으로 자신이 선택한 대상들을 추적한다. 특히 그의 시각의 독특함은 바로 예술가이면서도 과학적 눈으로 지각 대상들을 분석하는데서 기인한다.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의 예술가의 시각에 대한 설명을 가지고 와 박형준의 시각이 왜 독특한지 살펴보자. 지각과 예술의 관계를 이야기할 때, 벤야민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일찍이 그는 매체와 예술 관계의 변화는 지각의 변화로 파악했기 때문이다. 지각과 관련해서, 특히 시각과 관련해서 그는 지금도 여전히 이론적 힘을 발휘하는 재미있는 개념들과 비유들을 사용했다. 그 중 하나가 화가와 사진사의 시각 체계에 대한 것이다. 벤야민은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을 이야기하면서, 화가와 사진사 그리고 화가의 작품과 사진사의 사진을 비교한 바 있다.
벤야민은 화가와 사진사를 비교하면서 이 둘이 대상을 대하는 방식이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이야기한다. 화가는 마치 주술사처럼 거리두기를 하면서 대상을 다루고, 사진사는 마치 외과의사처럼 대상 그 자체로 침투해 들어가면서 대상을 분석한다. 환자를 예로 들어 설명해 보자. 몸이 아파 주술사를 찾아가면, 그는 본질적으로 상처 그 자체를 다루지 않는다. 즉 상처 주변에서 상처와 무관한 것들에 주목하면서, 상처를 치유하려고 한다. 반면 외과의사는 상처의 본질에 침투해 들어간다. 상처의 본질로 침투한 이후, 상처의 근원이 되는 것을 제거하고 치료하려고 한다. 주술사처럼 화가는 대상과의 거리두기를 통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대상과 만나는 것이다. 반면 사진사는 외과의사처럼 대상과의 거리 없애기를 통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대상과 만나는 것이다. 기술이 예술의 영역에 들어오면서, 예술적 대상을 대하는 방식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벤야민은 이야기하고자 한 것이다.
벤야민의 설명을 가지고 와 박형준의 작품을 보자. 아니, 그가 대상을 대하는 방식을 보자. 그는 주술사와 유사한 방식으로 대상을 다루는 화가의 눈으로 대상을 대하고 있는지, 아니면 외과의사와 유사한 방식으로 대상을 분석해 들어가는 사진사처럼 대상을 다루고 있는지 말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그는 예술가임에도 불구하고 외과의사처럼 대상을 다룬다. 작품을 만들어내기 위해 그는 대상 그 자체 속으로 점점 더 침투해 들어간다. 그는 침투의 과정을 그리고 침투의 결과와 그에 대한 해석을 작품으로 드러낸다. 동시에 그는 광학적 기계를 통해 대상을 보기 때문에 벤야민적 의미에서 사진사이기도 하다. 그런데 사진사인 그는 대상을 주술사처럼 거리두기를 하면서 관조한다. 정밀한 도구를 가지고 대상을 향해 침투해들어가는 그는 역설적으로 그 대상과 철저히 거리두기를 한다. 대상 밖에서 대상에 침투하고, 대상 안에서 대상과 거리두기를 하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난다. 도구가 매개된 눈과 맨 눈이 중첩되고, 대상의 안과 밖이 모호해진다. 내부는 확장되고, 외부는 심화된다. 이처럼 그는 시각의 혼종화를 몸소 실천하고 있다. 이러한 그의 혼종화된 시각화는 그가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게 되는 순간, 더욱 혼란스러워진다. 바로, 그 대상이 자신의 몸이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몸을 예술적 표현의 도구로 기꺼이 사용한다. 그는 최첨단 광학도구와 첨단영상의료기기들을 자신의 몸과 결합해서 자신의 몸을 확장한다. 그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최초의 매체가 몸이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몸을 도구로 사용함과 동시에 대상으로 사유한다. 그는 분석 대상이 외부적인 대상이든 아니면 자기 몸이든지 간에 구별 없이 그 속으로 침투해 들어간다. 그에게 주어진 도구를 활용해서 그는 자신의 몸으로 깊숙이 들어가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그의 시각은 박형준이라는 지각 주체의 시각이며, 동시에 이러한 주체가 관찰하는 지각의 대상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굳이 왜 몸이고 또 굳이 몸 안일까? 새로운 광학도구가 등장하고, 이를 통해 획득된 이미지들은 처음에는 의심의 대상이었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사람의 눈이 아니라, 기계의 눈을 통해서만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기계의 눈의 오류 가능성에 대한 의심을 걷어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새롭게 등장한 광학도구들은 점차 의심의 단계를 지나, 수용되고, 또 광학기구들이 보여주는 이미지도 수용됨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수용됨에도 불구하고 또 문제가 남는다. 그것은 바로 해석의 문제다. 새로운 광학도구들이 존재했으나 보여지지 않았던 것들을 보여주기 시작하면서,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하는지에 관한 문제가 생긴 것이다. 이러한 광학도구의 역사에서 보여주는 문제는 지금도 유효하다. 각종 첨단의료기기들의 등장으로 인해, 인간의 몸은 속속히 가시성의 영역으로 들어왔다. 우리가 흔히 정신이라고 하는 것만 제외하고 말이다. 박형준의 작가적 호기심은 바로 여기서 출발한다. 그는 말한다. 다양한 광학기구들을 통해 자신의 정신을 보고 싶었다고. 몸 어딘가에 정신이 있을 거 같다고. 최첨단 의료기기들이 등장하고, 기계가 단지 인간의 외연만을 확장하는 것을 넘어, 인간의 내부와 의식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지금, 휴먼이 아니라, 포스트 휴먼이 이야기되고 있는 지금, 그는 포스트 휴먼적 시도를 하고 있는 듯 해보지만, 사실 그 내면은 근대의 심신의 문제에 관한 것으로 회귀하는 듯하다. 몸과 마음의 관계에 대해 여러 가지 가설들이 난무했던 그 시절 말이다. 그 시절의 철학적 또는 과학적 근본문제로 돌아간 그는 첨단의료기기들이 재현해낸 이미지들을 가지고 해석을 넘어 상상하기 시작한다. 여기서 작동하는 시각은 바로 주술사처럼 대상을 대하는 사진사의 시각인 것이다. 포스트휴머니즘에서 근대로 그리고 근대에서 다시 신화적 상상의 시대로 회귀했다. 바로 이러한 회귀, 역발상이 작가 박형준의 독특함을 구성한다.



해체적 감정 공간의 탄생 : 공감과 반감 그리고 텔레파시/ 유원준 (매체미학, 미술비평)

...만약, 박형준 작업의 의미를 공감과 반감의 과정으로 풀이해보자면, 그것은 일련의 공감-반감 그리고 기술이 개입된 원격정신반응, 즉 텔레파시의 과정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리고 여기에 자아에서 타자로, 타자에서 다시 자아로 되돌아가는 환원적 사유가 중첩된다. 박형준은 자기 자신에 관한 관찰로부터 자아, 즉 주체로서의 자기 인식의 과정을 탐구하려 한다. 2011년작 <나는 나를 선택하지 않았다>에서 그는 3D 프린터와 거울, 센터와 모터라는 기술적 매개체를 통해 자신에 관한 반영을 시도한다. 자신에 관한 관찰은 타자에 의해서 혹은 거울과 같은 매체를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인식하는 데에 자기 자신 이외에 다른 그 무엇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결국 스스로를 규정하는 (타자와의) 차이에 관한 인식으로 귀결된다. 따라서 타자에 대한 욕망이 그리고 그로부터 인식되는 자기규정이 작품의 주요한 의미 체계를 구성한다. 작품은 3D 프린터로 만든 조형물을 거울 위에 설치하여 착시를 통한 환영을 경험케 하는 방식으로 작동된다. 관객은 가시적이지만 실재하지는 않는 조형물을 통해 가상과 현실의 간극을 체험하게 되며, 작품의 제목이 암시하는 선택적일 수 없는 자아라는 추상적 존재에 접근하게 된다.
이러한 기술적 장치에 의한 자아 그리고 자신으로부터 파생된 감정에 관한 관찰은 2012년작 <Inside Outside>에서도 발견된다. 이 작품은 보다 직접적으로 작가와 관객의 신체적 연결을 시도한다. 외부(바깥)에 위치한 관객의 심장 박동수에 의해 내부(안)에 있는 작가의 신체가 반응한다는 작품의 내용은 이중적 속박 구조를 지닌다. 하나의 작용은 심장 박동이라는 생체 현상이 타자의 신체 움직임을 부여하는 요소가 된다는 매우 명확한 기술적 작용이다. 관객들은 손가락 센서를 통해 스스로의 심장 박동을 유리라는 매개물 안에 위치한 작가(행위자)에게 전달한다. 작가는 팔에 붙어있는 전기적 물리 치료기의 전극을 통해 관객의 박동을 전달받는다. 그런데, 흥미로운 부분은 이러한 작용이 신체적인 차원에서만 수행되는 것이 아니라 감정적 작용과 맞물려 있다는 점이다. 관객은 자연스럽게 자신과 연결되어 있는 행위자의 신체를 관찰하게 된다. 안과 밖을 구분하는 유리라는 매개체는 서로의 신체와 표정을 투명하게 매개한다. 따라서 관객은 행위자의 신체를, 행위자는 관객의 신체를 마주한다. 이러한 상황은 관객의 심장 박동이라는 최초의 신호 발생의 순간조차 신체적-감정적 연대의 구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드러낸다. 행위자의 신체는 관람객의 감정에 그리고 행위자의 감정은 관람객의 신체로 동시에 침투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공감과 반감, 안과 밖이라는 대립 지점과 거리가 소멸하는 원격정신반응이 함께 발생한다.
한편 <떠다니는 신체>, <투과될 수 있는 심장>, <비어있는 자소상>의 작품 군을 종합하는 <나는 인공물이다>의 경우, 앞서 언급했던 <나는 나를 선택하지 않았다>에서 드러났던 자아에 대한 일련의 감정(불신과 반감)을 보다 과학적이고 기술적인 방식으로 검증하는 작품들이다. 작가는 의학 연구소에 의뢰하여 자신의 몸을 MRI(Magnetic Resonance Imaging, 자기공명영상)를 통해 스캔한다. MRI는 자기장을 발생하는 커다란 자석 통 속에서 고주파를 발생시켜 신체부위에 있는 수소원자핵을 공명시켜 각 조직에서 나오는 신호의 차이를 측정하여 컴퓨터를 통해 재구성하여 영상화하는 기술이다. 박형준은 영혼이라는 비과학적 요소의 실재 존재 유무를 파악하기 위해 과학적 방식을 도입한다. ‘우리에게 영혼이 존재하는가?’, ‘영혼이 존재한다면 어떠한 형태일까?’ 그리고 ‘그곳이 존재하는 장소는 어디인가?’ 등의 실질적 의문은 작품을 크게 세 가지의 작품 군으로 구성하게 만든다. <떠다니는 신체>는 MRI 스캔시의 비디오 촬영 영상과 그것을 스캔한 1000장의 이미지로 구성된 작품인데, 신체 내부에서 영혼을 탐색하는 과정을 가시적으로 드러낸다. 이 작품은 두 가지 차원의 감정적 인식을 유도한다. 첫 번째는 스스로의 몸이 제약된 상황에 관한 주체적 인식이며, 두 번째는 그러한 제약에 묶인 신체를 타자화 된 시선으로 관조하는 객관적 차원의 것이다. 전자는 신체 내부의 영상/이미지를 스스로의 몸에 투영시켜 보편적 신체의 이미지를 경험케 만들며, 후자는 마치 새로운 세계를 유영하는 듯한 유사-항해 경험을 제공한다. 그러나 이 두 가지의 인식 과정은 인간의 신체라는 공간 속 특정 장소들에서 다시 충돌한다. <투과될 수 있는 심장>은 이러한 충돌의 지점이 발생하는 첫 번째 장소이다. MRI 데이터를 바탕으로 실제 크기로 제작된 가상의 밀납-심장은 영혼이 머무르는 유력한 추정 장소로 간주되었던 심장이라는 공간을 물리적 오브제로 해체한다. 신체 ‘속’에서 인간을 구성하는 가장 근본적인 작동 기재인 심장은 신체 ‘밖’에서 객관화되어 결국 신체의 일부로 귀속될 수밖에 없는 존재론적 성질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비어있는 자소상>의 경우, 또 다른 장소인 ‘뇌’라는 신체 기관을 비어있는 공간적 요소로 차용한다. 225개의 투명 아크릴 판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우리의 얼굴과 머리의 외형적 요소를 입체적 부조 기법으로 제시한다. 2mm 두께의 판이 결합되어 정육면체의 입체 큐브를 구성하는데 안 쪽이 비어있는 형태이다. 흥미로운 점은 작품 제목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머리의 형태가 환조가 아닌 속이 비어있는 부조의 형태로 나타난다는 점인데, 작가의 메시지가 드러나는 곳이 바로 이 지점이다. 위의 심장과는 다르게 <비어있는 자소상>이 제시하는 인간의 머리-두뇌는 오히려 공간 속에 갇혀있는 동시에 비워져 있다. 때문에 ‘비어있다’라는 자소상에 덧붙여진 수식은 작품의 출발점이 되었던 영혼의 실재적 부재를 의미하는 동시에, 현대 과학 및 의학이 규명하고자 하는 인간 신체에 관한 혹은 영혼에 관한 접근이 결국 우리의 환상에 갇혀있음을 자각하게 만든다.
이러한 자아 탐구의 과정은 결국, 타자에 대한 관계로의 이해 과정, 그리고 그러한 주체와 타자를 관통하는 보편성에 대한 의식으로 전이된다. 그리고 작가는 자아에 대한 감정적 의식의 공감과정과 공감의 반대편에 위치하는 감정이 투영되는 방식 그리고 기술적 매개를 통한 원격정신반응 즉 텔레파시적 과정으로 이러한 경로를 추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