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준
M’cube is a program to discover and support young artists who explore experimental territories with a passion for novelty and challenge their limits.
ABOUT
신상준 Shin Sangjun
B.1999
Education
2026 | 홍익대학교 일반대학원 동양화과 졸업 |
2023 |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 졸업 |
GROUP Exhibition
2026 | 《지워지고 새겨진》, 갤러리밈, 서울, 한국 |
| 《도마뱀 비늘 조각》, 방도, 서울, 한국 |
| 《Everything Dance Hall》, 홍익대학교 현대미술관, 서울, 한국 |
2023 | 《사실상상실》, 서교예술실험센터, 서울 |
2022 | 《oo실종》, 계동 배렴가옥, 서울, 한국 |
작가 노트
나는 디지털 게임 이미지와 고향의 이미지를 수집하여 나와 나를 둘러싼 상이한 환경 사이의 거리감을 닥지와 수
채물감, 아크릴릭을 결합하여 흐릿하게 구현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나의 작업은 내 주변에서 마주하는 장면들, 대 상과 풍경을 수집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성인이 되고 지방에서 서울로 상경한 이후부터, 나를 둘러싼 환경과 그 환경 속에서 파악되는 나 자신의 위치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왔다.
그때부터 디지털 게임 이미지가 눈에 들 어오기 시작했다. 디지털 게임 속 장면들은 도시의 실제 풍경으로부터 어느정도 거리를 두고 있으면서도, 내게 그 안에서 주체적으로 행동하고 다양한 대상들과 마주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했다.
이러한 이미지들을 다루면서 내가 멈춰 서게 되는 장면은 어떤 것인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해왔다. 이미지를 모아 두고 바라보니 그 장면들은 어딘가 오래되어 보이고, 등장하는 대상들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오히려 친숙한 인상 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그러한 생각을 하던 중 우연히 고향에 내려갈 일이 있었다. 거창에서 마주한 장면들은 이 전에는 너무나 일상적이어서 눈에 들어오지 않았었지만, 오히려 디지털 이미지에서 다루었던 장면들보다 강렬하 게 다가왔다. 오래되어 보이면서도 나와의 거리가 훨씬 가까웠기 때문이다. 디지털 이미지를 통해 내가 세상을 바 라보는 방식을 의식하게 되었다면, 이제는 그 방식으로 다시 나를 둘러싼 풍경들을 어떻게 바라볼 수 있을지 고민 하게 되었다. 그렇게 제작한 작업이 <굴절하는 화살>시리즈였다.
내가 수집하는 이미지들은 대부분 그 세부가 보일 정도로 선명하다. 풍경 속에는 어떤 대상이 있고, 그 대상을 이 루는 작은 요소들이, 또 가까이 가면 더 작은 대상들이 있다. 그러나 내 작업에 가까이 다가가 보게 되는 것은 인상 을 만들어내는 표현들, 그리고 뒤섞인 닥지의 표면이다. 어떤 기억처럼 보이는 장면을 보여주면서도, 가까이 다가 가면 그것이 실제로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 명확히 파악할 수 없는 장면을 만들고 싶다. 내가 스스로, 그리고 스 스로의 위치를 파악하고자 했던 것이 달성될 수 없던 것처럼,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작업이 시작될 수 있었던 것처 럼 보는 이도 무언가를 바라보려 하지만, 주변을 맴돌며 도달하지 못하는 감각을 경험하고, 거기에서 각자의 이야 기를 짜 맞춰보려 했으면 한다.
지금의 작업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순차적으로 설명하자면, 나는 어린 시절부터 동양화 매체를 다루어 왔다. 성 인이 되어 서울로 올라온 이후에도 한동안은 동양화라는 매체와 나 자신을 강하게 연결지어 상상했던 시기가 있었 다. 충실하게 전통에 임했던 시기도 있었고, 촌스럽다고 느끼며 거리를 두고 벗어나려 했던 시기도 있었다. 이러한 변화에 따라 매체 실험 또한 이어졌다. 이러한 과정에서 여러 내용과 형식, 대상이 등장했음에도 그들이 나를 충분 히 설명해주지 못한다는 느낌을 자주 받았다. 그때부터 이전 작업들의 표면이 내게 매우 부담스럽게 느껴지기 시 작했다. 비록 그 시기부터 디지털 이미지를 다루기 시작했지만, 당시 그 장면들이 나와 어떤 방식으로 연결되는지 설명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기존의 그림 표면을 덮어버리고 싶었고, 동양화의 보존 기법인 배접을 역으 로 활용하여 그림 표면을 덮는 방식으로 작업을 진행하게 되었다.
당시의 작업은 그림을 닥지로 덮은 뒤, 아래에 있던 이미지를 먹을 통해 연한 실루엣으로 다시 그리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배접된 종이에 물을 뿌려 일시적으로 반투명하게 만든 뒤, 아래 이미지를 따라 그리는 방식으로 작업을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나는 이미지를 흐리게 만들기 위해 그 대상을 다시 마주해야 한다는 모순을 인식하게 되었 다. 그 순간부터 확인하고 인식하는 행위 자체를 작업의 중요한 과정으로 다루게 되었다. 내가 그리기 위해 확인하 는 행위가 오히려 그림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주길 바라게 되었고, 그러한 이유로 수채물감을 사용하게 되었다. 그 림을 그리기 위해 이미지를 확인하려는 행위는 화면 위에서 번짐을 만들고 이미지를 흐리게 만든다. 그것을 다시 따라 그리지만 다시 번져 버리고 마는 흔적들이 중첩되며 하나의 인상을 형성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과정 속에서 하나의 이미지를 여러 레이어가 분담하는 평면을 경험하게 되었다. 한 장면을 두 개, 세 개, 네 개의 레이어가 나누어 지탱하고 있는 상태를 보면서 오히려 어떤 안도감을 느끼게 되었다. 하나의 이미 지가 지닌 무게를 여러 레이어가 함께 떠받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한편으로는 확인할 수록 흐려지는 이미지의 상태와 동시에 레이어들이 겹쳐져 고정된 표면을 상상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배접과 함께 아크릴릭 바인더를 사용하게 되었다. 이 두 가지 방식이 뒤섞이며 현재의 작업이 만들어졌다. 이러한 작업 방 식은 내가 고민해 온 지역의 이동, 매체의 변화, 그리고 나를 둘러싼 환경과도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들 은 명확히 파악하기 어렵지만, 그러한 파악 불가능성 속에서 다시 바라보게 되는 나 자신의 모습과 닮아 있다고 생 각한다. 이러한 겹들은 일종의 완충지대와 같은 역할을 하며 지층처럼 쌓인다. 내가 이미지들을 흐릿하게 만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내가 마주했던 풍경들이 비록 나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그것이 단지 개인적인 이야기 로만 남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우리는 수많은 맥락과 이야기, 그리고 이미지들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그 속에서 스스로를 이해하려고 한다. 그 러나 그러한 시도는 언제나 불완전하고 덧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우리는 계속해서 무언가를 바라보려고 한다. 그래서 나의 작업이 개인적인 경험을 넘어, 보는 이들에게도 어딘가 기억과 같은 방식으로 작동했으면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