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ube
전기 장판 MANIA
박지혜
2020.01.08 ~ 2020.02.16
M’cube는 새로움에 대한 열정으로 실험적 영역을 탐구하고 그 한계에 도전하는 영아티스트를 발굴ㆍ지원하는 프로그램입니다.
M’cube is a program to discover and support young artists who explore experimental territories with a passion for novelty and challenge their limits.
M’cube is a program to discover and support young artists who explore experimental territories with a passion for novelty and challenge their limits.
ABOUT
박지혜
박지혜Jihye Park
학력
2014 중앙대학교 일반대학원 서양화학과 졸업
2010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서양화학과 졸업
개인전
2020 <전기장판 MANIA>, 갤러리밈, 서울
2019 <그림수거>, 아트비트갤러리, 서울
2013 <기념비적인 일상>, Gallery POS, 서울
2012 <감정의 계절>, 아트스페이스 스칼라티움, 서울
그룹전
2019 <STAR; Start Of Point 별이 빛나는 시간>, 대구EXCO, 대구
2019 <2019 PACK: 모험! 더블 크로스>, 탈영역 우정국, 서울
2018 <제 3회 A1 신진작가전>, 금보성아트센터, 서울
2017 <네이버x프린트베이커리-오직.순수.회화>, 프린트베이커리, 서울
2016 <Carnival_as_usual>,189hongfugallery, 중국
2016 <일상이상>, 네이버사옥, 분당
2015 <코타츠 드로잉>, 광진교8번가, 서울
2015 <예민한 수다>, 가회동60, 서울
2014 <A1 신진작가전>,가나인사아트센터, 서울
2013 <문전성시전>, 공평갤러리, 서울
2012 <코쿤 COCOON전>, 스페이스k, 과천
2011 <신세계 아트 스타전>, 예술의 전당, 서울
2011 <팀프리뷰 -시사회전>, 팀프리뷰, 서울
2009 <세이케이-중앙 교류전>, 공보문화원, 서울
Education
2014 M.F.A Course in Fine art Chung-Ang University, Korea
2010 B.F.A in Chung-Ang University, Korea
Solo Exhibitions
2019 <Electric pad Mania>, GalleryMeme, Seoul, Korea
2019 <Collecting Paintings>, Artbit Gallery, Seoul, Korea
2013 <Monumental day>, Gallery POS, Seoul, Korea
2012 <Season of emotions>, Art space Scalatium, Seoul, Korea
Group Exhibitions
2019 <STAR; Start Of Point The Starry Time >, Daegu EXCO, Daegu, Korea
2019 <2019 PACK: Adventure! Double Cross>, Post Territory Ujeongguk, Seoul, Korea
2018 <The 3th A1 rising artist>, Kum Boseong Artcenter, Seoul, Korea
2017 <Naver x Printbakery-only. pure. art>, Printbakery, Seoul, Korea
2016 <Carnival_as_usual>, 189hongfugallery, Suzhou, China
2016 <日常以上>, Naver, Bundang, Korea
2015 <こたつ drawing>, Riverwiew 8th Avenue, Seoul, Korea
2015 <Sensitive chatter>, Gahoedong60, Seoul, Korea
2014 <A1 rising artist>, Insaartcenter, Seoul, Korea
2013 <A mass of customers>, Gongpyeong, Gallery_Seoul, Korea
2012 <COCCON>, Space k, Gwacheon, Korea
2011 <New Generation art star exhibition>, Seoul Arts Center_Seoul, Korea
2011 <TeamPrivew-Preview>, TeamPrivew, Seoul, Korea
2009 <SEIKEI ,CHUNG-ANG Art exchange exhibition>, Japan Cultural Center_Seoul, Korea
작가노트
전기장판에 대한 강한 기억은 내가 부모와 떨어져 혼자 자기 시작할 때부터였던 것 같다. 추위에 둔감했던 몸은 심리적 불안 때문인지 스트레스를 받을수록 예민해져 극심한 비염과 알레르기를 얻게 되었고 손발은 항상 차가웠다. 날이 조금만 추워져도 감기에 걸리고 숨을 쉬는 것도 쉽지 않았다. 고통스러운 기억은 겨울을 두려워하게 만들었고 따뜻함과 변하지 않는 온도를 갈구하게 됐다. 조금의 과장을 섞어 나는 7, 8월의 무더위를 제외하면 전기장판 위에서 잠을 잤으며, 그 작은 공간 안에서 고양이 두 마리와 자리싸움을 하며 대다수의 생활을 했다.
이 생활은 작업실까지 이어져 보일러가 없는 차가운 바닥과 의자 곳곳에 전기방석 및 전기장판을 깔아두고 난로들을 켰다. 실내지만 바깥과 같은 공기를 가진 이 공간에서의 작업은 마치 숲속에서 혼자 야외스케치를 하는 것 같았다. 털모자에 담요를 두르고 전기장판과 난로의 미약한 열에 의지하지만 그걸 넘어서는 추위에 얼굴이 하얗게 질리고 손은 굳어 딱딱해지며 몸은 떨렸다. 결국, 외풍이 들어오던 3개의 커다란 창문을 두꺼운 포장지로 막았고 그렇게 빛이 일절 들어오지 않게 된 공간은 낮이나 밤이나 어두웠다. 그곳에서는 시간은 멈춘 듯했다. 그곳은 현실의 세계에서 벗어난 그림만을 위한 세계였으며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감각이 혼재된 이미지를 상상할 수 있었다.
상상의 시선은 특히 화장실에 붙어 있는 작은 나방들에게로 향하게 되었다. 그것들은 작업실에서 나를 제외한 유일한 생명체로 마치 내 그림을 구경하러 온 관객, 혹은 비판의 눈길로 바라보는 평가의 시선 같았다. 그것들은 죽여도 다음 날이면 또 태어났고 우리는 서로를 관찰했다. 하나 진화한 듯 꿋꿋이 버텨냈던 나방들도 추위를 이기지 못했는지 하나둘씩 사라졌고, 영하의 온도가 모든 생명체를 잠식했을 때 나도 이 전시의 준비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신체적, 정서적 추위로 전기장판 마니아가 되어 현실과 상상의 세계를 오고 가는 지금의 시기를 남겨보며 언젠가 마음껏 온도를 컨트롤 할 수 날이 오길 바라본다. (박지혜)
작품평론
참조물들의 회화와 창작의 알레고리
고충환(Kho, Chung-Hwan 미술평론)
이탈리아의 트랜스아방가르드, 프랑스의 자유구상, 독일의 신표현주의와 통독 이후 라이프치히화파, 영미권의 뉴페인팅, 그리고 일본의 재팬팝(혹은 마이크로팝)은 형상미술의 다른 차원을 열었고, 그렇게 열린 차원은 현재진행형이다. 저마다 지향하는 이념이며 형식은 각양각색이지만, 예술의 정의는 물론 형식과 방법론마저 특정할 수 있다는 모더니즘패러다임에 대한 안티테제로서 제기된 포스트모더니즘의 예술 관념과 실천논리를 공유한다는 점에서 하나로 통한다. 일반화하기는 그렇지만, 대개 회화적 사실 혹은 현실에 대한 생각을 공유하고 있는 것도 일맥상통한 점이 있다. 회화에 의해 열린 사실, 회화에 의해 제안된 현실인식을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현실과 내통하면서 여전히 현실에 근거하지만, 그럼에도 더 이상 현실 그대로를 재현하지도 현실에 한정되지도 않는다. 여전히 현실을 참조하지만(그러므로 어쩜 현대회화는 이런 참조물들의 회화로 정의할 수도 있을 것), 그럼에도 현실은 더 이상 회화적 현실의 준거가 되지 못한다. 그 관계는 역전되는데, 회화적 현실이 오히려 혹 간과했을지도 모를 현실, 억압적인 현실, 잠재적인 현실, 그러므로 어쩜 겉보기와는 다른 현실의 민낯을 드러내고 폭로하는 거울이 된다. 그 화법은 리얼리즘적이라기보다는 알레고리적이다. 참조하고 덧붙이면서, 우회적이고 에두르면서 실체를 파고든다. 그렇게 현대미술 특히 회화는 사적언어들의 각축장이 된다.
국내에도 이런 작가들이 더러 있는 편이고, 박지혜 역시 그 경향에 속한다. 그러면서도 자기만의 독창적인 회화적 형식을 열어놓고 있다. 일러스트와 애니메이션, 웹툰과 만화(작가는 만화 세대고, 지금도 만화를 즐겨본다)와 같은 대중매체로부터 자양분을 흡수하면서, 그렇게 흡수한 자양분(어쩜 참조물들)을 회화적 형식으로 부려놓는다. 사사로운 일상적 에피소드와 현실인식을, 순간적인 발상과 착상을, 혼미한 기억과 스쳐지나가는 생각을 믹서 시키면서 또 다른 현실, 어쩜 다중 복합적이고 중층화된 현실, 느슨한 현실에 가려진 긴박한 현실인식의 장을 열어놓고 있는 것이다.
사고가 났다. 아스팔트 위에 현장보존과 사태수습을 위해 경찰이 스프레이로 그려놓은 그림이 선명한 걸로 보아 아마도 자동차에 사람이 치었을 것이다. 그리고 한 사람이 얼굴을 바닥을 향한 채 엎어져 있다. 그 곁을 무심하게 지나치는 사람들이 있고, 자기 생각에 골몰하는 사람도 있다. 어딘가로 황급히 뛰어가는 커플이 있고, 그 와중에 키스하는 연인이 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나무 뒤에서 지켜보고 있는 고양이. 무슨 일인가를 목격한 것 같은, 얼굴에 피 칠갑을 한(?) 노랑머리 남자의 놀란 표정. 교통표지판과 경고등. 무의미한 패턴과 장식. 그리고 여기에 번쩍, 쿵, 슈욱 하는, 사건과 반응을 대신한 만화의 전형적인 표식들. 그리고 알 수 없는 사람들과 상황들.
작가가 <출근길>에 목격한 장면들이다. 흔한 일이고 일어날 법한 일이다. 이 일 중 몇 장면은 실제로 저녁 뉴스 시간에 TV에 나올 것이다. 혹 누군가가 전송해온 SNS로 접한 정보일 수도 있겠고, 아님 그저 잡지를 뒤적이다가 우연히 눈에 들어온 이미지일 수도 있다. 그 중에는 논리적 개연성이 있는 경우도 있고, 그저 우연한 장면도 있을 것이다. 여기서 실제 유무를 따지는 것이나 일관성을 요구하는 것은 무모한 일이고 의미도 없다. 중요한 것은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현실,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현실, 마치 영화 스크린에서처럼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일들이 실제 현실이 되는 현실, 흡사 가상현실과도 같은 현실이 엄연한 현실로서 눈앞에 전개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작가는 상황적으로 실제와 가상, 시간적으로 현재와 기억이 어떠한 경계도 없이 하나의 화면 속에 짜깁기되고 재구성되는 장면을 통해 현실의 축도를, 일상의 신풍속도를 그려 보인다.
그렇게 편집되고 재구성된 현실이 마르셀 프루스트의 의식의 흐름기법을 닮았다. 의식은 결코 순차적으로 흐르지도, 인과성을 따라 전개되지도 않는다. 의식은 다만 우연과 필연, 실제와 가상(아님 상상), 의식과 무의식이 끊임없이 상호 간섭하는 우연하고 무분별한 생각들의 다발이며 무의미한(사실은 다만 무의미해 보일 뿐인) 편린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게 하나의 생각이 다른 생각을 부르고, 하나의 의식이 다른 의식을 불러들인다. 자동기술법이고 자유연상기법이다. 거시적인 관점에서가 아니라면 그 생각과 생각, 의식과 의식 사이엔 어떤 논리적 개연성도 인과성도 없다. 그럼에도 현실이 간과하고 억압하고 은폐한 현실, 가히 집단체면 수준으로 부를 만큼 사람들의 의식을 무감각하게 만드는 이미지의 정치학에 가려진 현실을 암시하고 반영하는 거울이 된다.
그렇게 작가는 치열한 현실을 뚫고 작업실에 왔다. 작가에게 현실은 전쟁이고, 작업(워크그라운드)도 전쟁(배틀그라운드)이다. 마치 하나 달랑 남은 담배를 피울 것인가 아님 포기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이다(돛대). 그 순간에선 살 것인가 아님 죽을 것인가를 번민하는 햄릿의 비장감마저 감돈다. 그래서 하루에도 몇 번씩 <창작의 포기>를 생각한다. 손을 잘라내고 싶고 발이 떨어져 나가는 아픔을 느낀다. 그리고 때로 자기연민에 사로잡힌다(내 슬픔을 봐). 그 와중에서도 작가에겐 연민을 나눌 친구가 있다. 그는 미술학원에서 조소수업을 위한 알바모델 일을 한다(조소 아르바이트). 그가 모델을 서고 있으면, 무슨 둥지로 착각을 했는지 비둘기가 머리에 날아와 앉는다. 혹 머리에 똥을 쌀지도 모를 일이라서 그는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전전긍긍해 한다.
작가에게 비둘기는 애증의 대상이다. 그것들은 마치 작가를 감시하는 불행의 사신 같다(스쿼드). 술 취해 널브러져 있으면 떼거리로 몰려와 구구 거리는데, 작가를 보호하려는 건지 아님 토한 걸 탐하는 건지 알 수가 없다(구토의 숲). 그렇게 작가는 하루에 열두 번도 더 포기와 재기를 오락가락하는데, 비둘기는 재기했을 때보다 포기했을 때면 어김없이 확인이라도 하는 양 곁을 지킨다. 이를테면 폭풍우가 몰아치는 장대비를 뚫고 그림을 잔뜩 실은 리어카를 끌고 보이지도 않는 길을 무작정 갈 때면 비둘기가 짐 위에 앉아 작가를 지켜본다(그림수거). 사실 새 눈은 얼핏 봐서 어디를 쳐다보는지, 뭘 보기나 하는 건지 잘 알 수가 없다. 그럼에도 희한하게도 몸을 앞으로 쑥 내민 것이 영락없이 작가를 쳐다보는 것 같다. 작가를 향한 비둘기의 연민이 엿보이고, 비둘기에 대한 작가의 연민이 읽힌다. 개인적으로 연민이 예술가의 덕목이라고 생각하는데, 작가의 그림에서 발견되는 이런 연민이 상호교감을 자아내고 공감을 얻는다.
여기서 비둘기는 사실 작가의 분신이다. 작가의 불행을 감시하는 비둘기도 작가를 연민하는 비둘기도 모두 알고 보면 작가의 내면에서 불러낸 자신의 화신이다. 근육잉어(마치 근육을 키워야 해! 씩씩해 져야 해! 라고 스스로에게 말하는 것 같은)도, 고양이 레오도 그렇다. 이런 분신이며 화신도 그렇지만, 작가의 모든 그림은 알레고리다. 혹은 알레고리적이다. 현실 속에서라면 비둘기가 머리 위에 내려 앉아 똥을 싸는 일 같은 건 일어나지가 않는다. 창작을 포기한다고 해서 손이나 발이 떨어져 나가지도 않는다. 더욱이 폭풍우를 뚫고 무슨 행상인처럼 그림을 리어카로 실어 나를 일도 없다. 창작의 알레고리다. 하루에도 열두 번씩 포기와 재기를 반복하고 번복하는 예술가의 태도에 대한 알레고리고, 번민의 알레고리다. 그저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이라기보다는 예술이 뭔지, 예술의 죽음이 공공연한 현실로 운운되는(그리고 예술이 자본에 잠식당한) 시대에 새삼 창작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되묻는 자기강박의 알레고리다.
연민이 창작주체의 덕목이라면, 강박은 예술을 움직이는 힘이다. 작가는 그 덕목과 동력 모두를 가지고 있다. 그렇게 형식적으로 일러스트와 애니메이션, 웹툰과 만화의 회화적 성과를 자기화하면서, 그리고 여기에 현란한 원색 사용과 대비에 거침이 없는 현저하게 현대적인 색채감정을 바탕으로 자기만의 독창적인 회화적 형식을 얻고 있다. 그리고 내용적으로 특히 창작현실에 연유한 사사로운 일상적 에피소드와 현실인식을, 순간적인 발상과 착상을, 기억과 생각을 날실과 씨실 삼아 하나로 직조하면서 자기만의 서사를 짓는다. 그렇게 이야기를 지어내면서 현실에 가려진 현실, 때로 웃기지도 않은 현실(그러므로 해학적인 현실), 어쩜 현실보다 더 지극한 현실의 비전을 열어놓는다.
Paintings by Ji Hye Park <Painting of References and Allegory of Creation>
Chung-Hwan, Kho (Art Critic)
Transavantgarde of Italy, Figuration Libre ("Free Figuration") of France, Neo-Expressionism of Germany, Leipzig School(“Leipziger Schule”) after unification of Germany, New Painting of Britain and the United States, and Japanese Pop Art(alias “Micropop”) opened a new dimension for figurative art, and it is still ongoing today. Every ideology and its form is unique and diverse on its own, but they all come together as one in a sense that an anti-thesis for a definition of art and structure and methodology can be specified through modernism paradigm, in the notion of modernism art and practical logic. It is difficult to generalize, but a fact based on a painting or sharing thoughts on reality share a common thread as well. A fact revealed by painting shares a sense of reality through painting. An intrigue with reality but still based on reality; however the painting does not reconstruct reality or is restricted by it. It still refers to reality (therefore contemporary paintings may be defined by these references) but the reality does not become a foundation for reality in painting. The relationship becomes reversed when the pictorial reality depicts underestimated, suppressed, and potential reality, which becomes an exposing mirror to strip the bare face of reality. The language is allegorical rather than being closer to realism. Referencing and editing, it is indirect and oblique but penetrates into its core value. The contemporary art, especially painting becomes an arena of competition for private languages.
There are some artists in Korea with a similar disposition, and Ji Hye Park also belongs to the group. However, she adds her distinctive painting style to her work. She absorbs nourishment from mass media such as illustration, animation, online comic and cartoon (the artist is a cartoon generation, and still enjoys it today), she spreads her nourishments (perhaps references) in a painterly way. Tedious daily episodes, recognition of reality, momentary ideas and inspirations, faint memories mixed with a stream of thoughts passing by facing another reality, a reality which is multi-dimensional and much more complex, revealing an opening for an urgent realization of reality masked by leisure reality. An accident occurs. The spray paint drawn by the police is still fresh and by the look of it, it looks like a man was hit by a car. A person laid flat facing bottom. The people absentmindedly pass by, and some are caught up in their own thoughts. A couple runs toward somewhere, and meanwhile, another couple is kissing. A cat is glancing from behind a tree. A yellow-headed man with blood smeared on his face looks startled as if he witnessed something. Traffic sign and warning light. Meaningless pattern and decoration. Here, the artist added flash, thud, whisking indications typical of event and action used for a cartoon. Strange people and situations. These are scenes the artist witnessed through her <Way to Work>. It is a mundane and likely event to occur. Some of the events will actually be broadcasted on the evening news on TV. Some might encounter the news through social media, or it could be an image that came up while flipping through a magazine. Some have logical probability, or it is just a random scene. There is no use discussing the reality of it or requesting any consistency, and it is meaningless. What is important is that reality is much closer to a movie, to a novel, and all things imaginable on movie screen becomes a reality itself, which is a reality close to virtual reality unwrapped and played before us. The artist shows the reality and virtual reality, present and memory without any boundaries within a screen and shows edited and restructured scenes, which is a miniature of reality, and a new genre painting of everyday life.
The edited and restructured reality resembles a stream of consciousness of Marcel Proust. The consciousness never runs in chronological order nor does it follow an order of cause and effect. The consciousness is coincidence and inevitability, reality and virtual reality (or imagination), consciousness and unconsciousness constantly interact and interfere with inevitable and indiscretion bundles of thought, and meaningless (looking meaningless in reality) small portions. A stream of thought brings another thought, and a consciousness brings another consciousness. It is automatisme and free association technique. Unless it is from a macro perspective, there is no logical connection and cause and effect between thought and thought and consciousness between consciousness. However, the reality overlooks, suppress and conceal reality, and dull people’s consciousness till the point of group hypnotism, reflecting and inferring reality.
The artist endured fierce reality to come to her studio. The reality is a war for the artist, and her work (work ground) is a battle (battleground). It is a crucial moment just like when you have to decide whether to smoke the last cigarette or give up on it (last cigarette). There is a sense of heroism of Hamlet contemplating whether to live or die. A couple of times during the day, the artist thinks of <Giving up Creation>. She wants to chop off her hands and feels her feet falling off. Sometimes she falls into self-pity (look at my sadness). Meanwhile, the artist has a friend to share sympathy. He works as a part-time model for art academy (part-time sculpture). A pigeon comes by to sit on him when he models; mistakenly thinking it is some sort of a nest. He feels sweaty and anxious in fear that the bird might make a mistake on his head.
A pigeon is an object of love and hatred. They are like the grim reaper of misfortune overlooking the artist (squad). When the artist is drunk and sprawled across the floor, they all come around cooing, but it’s unsure whether it wants to protect the artist or attempts to go for the vomit (forest of vomit). The artist wavers between giving up and making a breakthrough more than twelve times a day, and the pigeon particularly stands by when he gives up rather than making a breakthrough to check. For example, when it’s raining cats and dogs, the artist pulls the handcart full of painting and continues the path unknown, and the pigeon stands on the top watching the artist (collecting paintings). To be honest, it is difficult to tell where the bird is looking at, or what it is looking at. However, the protruding body seems to stare directly at the artist. The pigeon’s sympathy towards the artist is evident, and the artist has sympathy towards the pigeon vice versa. Personally, I believe sentiment is a personal virtue of an artist, and sentiment present in the artist’s painting brings out mutual interaction and empathy of the audience.
The pigeon is actually an alter ego of the artist. The pigeon watching over the misfortune of the artist and empathizing is all an embodiment of self from inner side of the artist. It is applicable for the Muscle Carp (as if to tell yourself you must build muscle! You must be strong!), and cat Leo. These alter ego and embodiment, along with all the paintings by the artist is allegory or allegorical. In reality, the pigeon would never land on top of human head and leave droppings. Your hands or feet will not fall off even if you gave up creation. Moreover, you do not have to carry painting by handcart through a vicious storm. These are all allegory of creation. It is an allegory of the artist who repeats and reverses giving up and retries twelve times a day, and an allegory of torment. It is not the anxiety of the unknown, but about what art is, and an era where the death of art often mentioned as true reality (and art taken over by capital) an allegory asking self-obsessed questions about the meaning of creation.
If sympathy could be a virtue of the subject of creation, compulsion is the power to move art. The artist possesses both virtue and motivation. The artist formally introjects painterly success of illustration, animation, online comic and cartoon, and use vibrant original colors and contemporary color with a stark contrast to create a unique stylistic form. The content shows small episodes from daily life based on virtual reality; momentary idea and inspirations, memories and thoughts weaved into warp and weft into one, creating an epic of its own. These weaved stories reveal truth masked by reality, reality not so humorous (therefore witty reality), perhaps reality more extreme than reali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