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고 뜨거운 차고 빛나는
Kim Syyoung, William Lee
M’VOID is a program that plans and presents exhibitions of leading artists at home and abroad who question contemporary aesthetic values while strengthening their works with insights.
ABOUT
흑자(黑磁)와 은기(銀器)의 두 장인(匠人)
정영목(서울대 명예교수)
“아름다움에의 흠모는 - 도덕, 사실, 유용성, 감각,
그리고 되도록 현실 그 자체로부터 멀리 - 위험할 정도로 이들보다 우선한다.”¹
1. 장인의 작업(作業)
흑자와 은기는 분류상 공예(工藝)에 속한다. 이러한 분류가 요즈음 무의미하지만 그렇더라도 필자가 이야기하려 할 두 장인, 김시영은 도자공예가를 줄여 도예가로, 이상협은 금속을 다루기에 금속공예가지만 그냥 줄여 공예가로 호칭하는 것이 이들을 ‘작가’라 부르기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장인적 유대감이 강한 공예의 전통이 반영된
- ‘artist(작가)’라 통용되는 서구 모더니즘의 영향이 조금은 덜 묻어나오는 - 언어인 것 같기 때문이다.
공예는 기본적으로 재료에 천착(穿鑿)한 노동집약적 작업이다. 필자가 화두(話頭)처럼 던진
“아름다움에의 흠모”는 그 다음의 일이다. 그런데 공예 또는 미술과 관련하여 우리가 사용하는 용어의 대부분은 옛날부터 사용하던 한자어(漢字語)이거나 아니면 한자어에 기반한 일본식의 표기를 따른 것이다. 한 예로 공예의 장인정신과 직결되는, 흔히 쓰는 ‘작업(作業)’이란 언어를 살펴보자.
‘작업’이란 한자어의 의미를 우리말로 풀어쓰면 무언가를 ‘만드는 일’쯤 되지만, 이 말이 함축하는 뉘앙스의 범위는 한층 깊고 넓다. ‘업(業)’이란 어찌 보면 그냥 우리의 ‘생활(life)’ 그 자체를 의미한다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우선, ‘업’이라 하면 ‘일’이란 언어가 먼저 떠오르는데 이것은 우리의 몸과 사고와 직결되는 ‘노동’을 뜻한다. “몸과 사고의 노동”은 곧 우리의 ‘직업’과 ‘생계’로 이어진다. ‘업’을 실행한다는 것은 그것이 곧 우리의 ‘생활’일진대, 그것은 필연적으로 종교와 윤리 같은 무언가 ‘근원, 기초, 시작’과 연루된 사회적 함축성을 띨 수밖에 없다. 때문에 ‘업보(業報)’ 혹은 ‘인과응보(因果應報)’의 뜻을 품고 있으니, “몸과 입과 뜻으로 짓는 선악의 소행”이 곧 ‘업 (業)’인 것이다.
이 말의 뜻을 길게 늘어놓는 이유는 김시영과 이상협은 ‘작가’이기 이전에 기본적으로 공예의 행위와 사고를 ‘일’ 즉 ‘노동’으로 받아들여, 그 행위를 통해 자신의 ‘직업’을 표방하고, 그 직업을 통해 자신과 가족의 ‘생계’를 이어간다는 의미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즉 김시영과 이상협이라는 전업공예가로서의 ‘당당함’이 ‘작업’이라는 단순한 용어 속에 함축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업보(業報)’처럼 다가온, 주어진, 선택한 공예가로서의 고뇌와 환희의 ‘생생함’이 곧 ‘작업’인 셈이다. 이러한 작업의 속성이 생산해낸 결과물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이나, 사회의 현실은 ‘과정’보다는
‘결과’를 앞세워 유통과 가치의 ‘상품성’에 치중하는 자본주의적 모순을 안고 있다. ‘작품’이라 일컬어지는 결과물이 가질법한 그 과정으로서의 진정성의 농도와 미학적인 평가는 작가를 떠나 관람자가 개입하는 또 다른 범주의 문제인 것이다.
2. 김시영의 흑자(黑磁)
근자(近者)에 이르러 단색화의 재유행과 함께 단색화류의 추상을 공예도 추구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달항아리’가 한국인의 미감을 대표하는
‘미적(美的)’ 오브제로 부각(浮刻)하면서, 전통과 맞물린 추상성의 재현을 공예로 따라 하는 경향이 생겼다는 이야기다. 그 경향과 함께 공예는 공예의 태생적인 기능(器能)과 멀어지면서 흔히 우리가 미술의 주류라 일컫는 회화와 조각의 개념과 미학, 장식성을 덩달아 추구하기 시작하면서 ‘작가’라는 호칭으로 이들 두 장인을 편하게 부른다.
시대가 변했다 하더라도 공예의 순기능이 우리 일상생활과 함께 아름다움을 이야기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지론이다. 쉽게 말하자면 그림은 벽에 안 걸어도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지만, 그릇은 당장 먹는 데 없어서는 안될 필요충분조건의 기물이다. 필자보고 무식한 소리라 하겠지만 그만큼 공예의 태생적인 순기능이 약화되고 있는 느낌이 안타까워 한마디 적었다.
단색화의 재유행이 불러온 ‘이조백자’의 미감도 어찌 보면 유교적 도덕성의 시지각에 갇힌 우리 전통의 연장선상에 있다 하겠다. 전통의 재현은 복제(複製)를 넘어 그 시대 정신이 깃든 재현이되 ‘변형(transformation)’의 무엇이어야 한다. 공예의 순기능과 아름다움의 척도는 바로 이 변형된 무엇에 깃든 무엇이라 하겠다.
김시영의 흑자도 단색화의 미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왜냐하면 단색이기 때문에.²
그런데 김시영은 검정색의 톤은 유지하면서
‘항아리’라는 순기능의 형태를 무시한, 그야말로 자유롭게 조각적 느낌이 강한 볼륨(volume)과 매스(mass)의 ‘덩어리’ 개념으로의 변형을 꾀하고 있다. 포스트모던의 시대 정신?, 아니면 작업과 형식의 단조로움에 따른 일탈(逸脫)의 변형? 아니면 와일드(Oscar Wilde) 식의 “위험할 정도로” 추종하는 “아름다움에의 흠모”? 김시영의 변화는 매우 흥미롭다. 그의 다음이, 차제에 검정색도...
3. 이상협의 은기(銀器)
‘달항아리’의 재료는 ‘은판(銀板)’이다. 말 그대로 은으로 된 널찍한 판을 두드려(단조 鍛造) 항아리를 만들고, 만든 항아리의 색(色)과 형태가 달을 닮아 순수한 우리말로 ‘달항아리’라 불린다.
은(銀 silver)은 하얗다. 해서 백은(白銀)이라 불리기도 한다. 은은 다른 금속에 비해 무르기 때문에 단조에 유리하다. 또한 표면에 들어오는 빛의 대부분을 반사해 금속 중에서 광택이 가장 강하다. 이러한 속성으로 말미암아 동서양은 고대로부터 은을 귀중하게 취급했고, 그 은은한 빛깔 때문에 ‘달’과 관련한 상징과 신화로 자주 등장한다. 이러한 재질의 탁월한 가치는 고대로부터 통용되어 종교용의 제기
(祭器)나 상류사회의 일상 용기를 제공하는 공예의 고급재료로 사용되었으며, 특히 16세기 이후 영국을 비롯한 유럽인들 사이에 떠도는 은그릇의 명성은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온다. 때문에 영국에서 먼저 작가로서의 명성을 획득한 이상협의 작품 저변에는 이러한 역사성이 깃들어 있다 하겠다.
은(銀)은 한때 금(金)보다 더 대접을 받았었다. 그래서인지 ‘돈(화폐)’의 저장고인 은행(銀行)을 ‘금행(金行)’이라 부르지 않나 보다. 은행(銀行)이란 한자어의 어원은 중국이다. 한때 은본위제 국가였던 중국의 영향으로 우리도 은을 화폐로 사용했듯이 ‘은행’이라는 말은 은의 유통에서 비롯되었다.
‘항아리’를 만들 여러 재료가 있을 수 있겠으나, 예를 들어 그림과 사진 또는 영상 등도 매체로서의 동등한 등가관계로 금속과 비견(比肩)할지언정 은의 상징과 가치가 그러하듯, 이상협은 노동과 조형 차원 이전에 매우 비싸고 좋은 재료를 점유함으로써 일단 한 수 접고 ‘메인(main)’ ‘게임(game)’에 임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상협은 “flow, 흐름, 흘러내림, 얼어붙음, 녹아내림 등 자연의 유기적인 현상에서 (작품의) 영감”을 얻었다 한다. 이 영감의 발현은 조형적으로, 또는 형식적으로 ‘달항아리’라 불리는 은기의 표면에 나타나는 질감의 재현적인 표현과 매우 닮아있다. 물론 무수한 노동의 망치질 가운데 몸과 정신이 일치하는 무아의 몰입감도 있었을 테지만, 어쨌든 그 질감은 타격의 힘(에너지)을 조절하는 가운데 우연히 생성되는, 때로는 의식적으로 생성한 추상적인 질감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런 추상적인 질감의 부분과 전체의 표피가 관람자에게 매우 매혹적으로 다가와 그 자체만으로도 만져보고 싶은 촉각적인 충동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거기에 덧붙여 기억에 의한 우리의 시지각은 무언가를 연상해내어 마치 무언가 ‘흐르는’ 듯한 정서와 맞닥뜨려 시공간을 초월한 각자 나름대로의 재현적인 일상으로 우리의 상상을 이끌어간다.
때문에 ‘달항아리’의 매력은 다음의 두 성격으로 집약된다. 첫 번째, ‘달’과 ‘항아리’의 결합이 불러일으키는 과거지향적인 정서와 두 번째는
‘추상(성)’과 관련한 현대미술의 정서로 풀이할 수 있겠다. 또한 이 둘의 성격은 결국 모여져 ‘단색화’와 관계되는 형식적인, 미학적인 논의들과 맞물려있다는 것이 필자의 관점이다. 왜냐하면 최근 일고 있는
‘단색화’에 대한 복고적 취향의 미술시장성 역시 이들 논의의 틀과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서 밝혔듯이 변형의 관점에서 ‘은(銀)’을 떠난 이상협을 상상할 수 있을까?
필자는 이번 전시의 기획을 ‘흑과 백’의 단색조에 맞춘 두 공예가의 작품이라 생각한다. 물론 재질은 달라도 거기서 흘러나오는 단색조의 미감은 서로를 떠받쳐주는 정반합의 어울림이 있을 것이기 때문에 관람자에게도 ‘나의 아저씨’ 같은 두 작가가 풍기는 은은하지만 듬직한 매력을 작품에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1] Oscar Wilde, The Critic as Artist, New York: David Zwirner Books, 2029, p. 13: “the worship of beauty takes precedence, dangerously, over morality, facts, usefulness, sense, and, as far as possible, reality itself.”
[2] 이것은 라우센버그(Robert Rauschenberg)의 <Black Painting>이 일본과 한국의 ‘단색화’ 계열과 무관하지 않다는 필자의 논리와 마찬가지로 김시영의 흑자도 비슷하다는 이야기다.
Jeong
Young Mok (Professor Emeritus, SNU)
“The worship of beauty takes
precedence, dangerously, over morality, facts, usefulness, sense, and, as far
as possible, reality itself.”[1]
1. Master’s
‘Work’ (作業)
Both
black ceramics and silver object are classified as craft. While such a
classification has lost its meaning in this age and time, I believe that the
labels of ‘ceramist’ and ‘metalsmith’ serve Kim Syyoung and William Lee,
respectively, better than the generic term ‘artist’. For, the labels, I insist,
not only show less influence from the Western modernism that calls everyone
‘artists’ but also reflect our tradition in craft that denotes a connotation of
‘artisan’ or ‘meister’.
Craft is essentially a labor-intensive work
that penetrates the essence of the material. “The worship of beauty”, quoted
above, is merely what follows. Most of the terms related to craft or art come
from borrowed words from Chinese or follow Japanese orthography based on
Chinese letters. For example, let us take a look at the word 作業 which is directly connected to the idea of craftsmanship.
If we are to directly translate the Chinese word
作業 into Korean, we could perhaps say ‘to make
things’; there are, of course, deeper and wider connotations to the nuance of
this word. The letter 業 might as well be translated to ‘life’ itself
given its uses in Chinese language. And indeed, the most common association
that Korean speakers have with the word 業 would be ‘work’. Here, ‘work’ signifies a sense
of labor that employs both our body and our mind. A ‘labor of body and mind’,
then, connects to our ‘occupation’ and the act of ‘making a living’. To act on
‘業’, therefore, marks the beginning of our
‘life’ and is inevitably connected to the notions of ‘origin, basis, or
beginning’, of which societal implications bear resemblance to religion or
ethics. As we see in examples of ‘業報’
(roughly, Karma) or ‘因果應報’
(roughly, a just punishment or recompense), ‘業’ constitutes a sense of the struggle between
right and wrong, and good and bad.
This etymological divergence is to emphasize
how Kim Syyoung and William Lee take the actions and thoughts of craft as
‘work’ (and hence ‘labor’) before declaring any occupational or vocational
connection to being ‘artists’. That is to say, these two masters assert
their ‘occupation’ not through obtaining a degree, for example, but by
committing to their ‘job’ and by ‘making a living’ for themselves and their families.
Simplified, not only is the confidence of these two professional craftspeople
imbued into the word of ‘作業’, but also the consciously chosen ‘vividness’ of
both anguish and euphoria as craftspeople that equate ‘業報’ (karma) eventually become their ‘works’. While
such properties of their artistic endeavor lead to the production of works that
belong to a wholly artistic realm, it is a shame that ‘reality’, with its
capitalistic irony, prioritizes ‘result’ over ‘process’ and hence values
‘marketability’ of the work. That is to say that the problem of aesthetic
judgment and evaluation of the artistic commitment to their ‘works’ is not
solely in the hands of the artists but at the mercy of the audience.
2. Kim
Syyoung’s Black Ceramics
Recently, craft, too, pursues the abstract
that we find in monochrome painting following its resurgence. More
specifically, as the ‘moon jar’ located itself as the iconic aesthetic objet
that represents South Korea, craft began to exhibit a tendency to represent the
abstract in connection to its tradition. With such a tendency, craft was
distanced from its inherent function and started pursuing concepts of painting
and sculpture (what we consider to be the two mainstream genres of art),
aesthetics, and decorativeness, eventually leading to the point where we are
comfortable calling these two masters ‘artists’.
It
is my contention that craft’s function remains the same despite the change in
the epoch, and that its everyday-life-ness must be discussed along with its
beauty. In other words, one does not need a painting on a wall to be able to
sustain one’s life, but a plate is a necessary condition for one to sustain a
human life. Some might dismiss my view on the basis that craft, too, is
gratuitous for the sustenance of life, but the point that I am raising here is
that craft’s inherent functions
are increasingly blurred these days.
The aesthetic of ‘李朝’ white porcelain (李朝
is an archaic term for Joseon), made popular again by the recent resurgence of
the monochrome painting, can be said to be the extension of our tradition that
is unfortunately trapped within the Confucian ethics and its perceptive limits.
The representation of the tradition should be a kind of representation that,
transcending beyond mere mimesis, steps into the realm of ‘transformation’ that
carries its zeitgeist. The criteria with which we assess craft’s
functionality and beauty should, so I argue, pertain to that realm of
‘transformation’.
Kim Syyoung’s black ceramics works, too, are
not free from the aesthetic of monochrome painting, as they employ a black monochrome[2].
However, Kim Syyoung’s ceramics works aim at a transformation as a sculptural lump
of volume and mass without
paying respect to the functionality of a ‘jar’ while maintaining the black
tone. How are we to make of this unique transformation? A postmodern zeitgeist?
Or an aberration that defies the monotony of work process and form? Or a
dangerous worship of beauty as Oscar Wilde explains? In any event, Kim
Syyoung’s transformation is scintillating. It draws attention to not only her
next project but also to the configuration of black monochrome.
3. Silver object by William Lee
The ingredient for the ‘moon jar’ is a ‘silver
plate’. By forging a flat, literal silver plate, the metalsmith crafts a jar.
The color and form of the jar resemble the moon, thus giving it its name.
Silver is
white. This is why we sometimes call it ‘白銀’ (literally ‘white silver’). Silver is softer
than other metals which makes it an excellent ingredient for forging. And because
of its surface that reflects most of the light, it shines the brightest among
metal. Such properties have put silver on a pedestal in both the East and the
West. Its shiny surface, moreover, has associated silver with the Moon, thus
recurring in symbols or myths related to it. The value of the material has been
recognized from as early as ancient times when plates for religious rituals or
upper-class cutlery preferred silver as its ‘fancy’ ingredient. Europeans, in
particular the 16th-century England, have put so much value on
well-crafted silverware that they are considered antique now. For William Lee
whose critical acclaim began in England and not his native Korea, such history
can be particularly meaningful.
Silver
(銀)
was more valuable than gold (金) at times. I believe
that’s why we call banks ‘銀行’
and not ‘金行’.
The etymology of the Chinese word for bank (銀行) comes from the time of the silver standard.
There can be many ingredients to craft a ‘jar’. For example, even painting,
photography, or videography can be used, in this age of abstract art, to create
an image of a jar as efficiently as metal. However, as the symbol and value of
silver suggest, one can argue that William Lee has taken the initiative on a
pricey yet valuable material to start his main game more luxuriously.
William Lee says to have been inspired by the
natural, organic phenomena such as “flowing, melting, or freezing”. The
manifestation of such inspiration resembles, both formally and stylistically,
the representations of textures appearing on the surface of the ‘moon jar’.
While it is evident that the metalsmith must have been immersed with both his
body and mind during the restless hammering of the plate, the texture that appears
on the surface is a product of accident that takes place in the random strikes
with varying degrees of strength. However, it is the randomness and the
abstraction of the part of the texture (and the entire surface that is a series
of such textures) that makes the audience want to feel and touch the ‘jar’. In
addition, our visual perception will associate the surface with the sentiment
of ‘flowing’ that, in turn, creates a reproduction of one’s life that
transcends spatiotemporal boundaries and leads our imagination.
In this sense, the appeal of ‘moon jar’ is
twofold. One, the past-oriented sentiment that the mixture of ‘Moon’ and ‘jar’
creates, and two, the sentiment of contemporary art related to abstraction. It
is my contention that such characteristics of the ‘moon jar’ will eventually
converge and create discourses related to the formal and aesthetic discussion
of the monochrome painting. This is also noticeable in the retro taste of the
contemporary art scene that focuses on monochrome painting. At the same time,
can we imagine William Lee without silver as his main material and main element
for the ‘transformation’ as I discussed earlier?
I see the project of this exhibition as a
convergence of two master craftspeople whose colors of ‘black and white’ are
contrasted. While they might use different materials, the monochrome aesthetic
that these materials emanate shows a dialectic harmony between them. The
audience will surely feel the subtle yet certain attraction of the works that
these two masters pronounce.
김시영
화염을 칠하다.
불에 의해 흙은 색과 형을 찾아간다.
사실은,
모든 것을 배제하고 불 자체에 집중했을 때
비로소 요변(窯變)이 흙에서 나온다.
불이 만들어내는 요변을 통해 발견하는
변화의 자유로움!
가마의 불꽃은 미지의 영역,
이 불확실성 속에서 나는 인간의 숭고한 삶을 발견한다.
<작가노트 중>
이상협
망치질로 금속이라는 물성의 한계에 도전한다.
전통 도자의 기형을 금속으로 재현해 내는 과정에서
‘기’(器)의 절제된 형태를 찾고
그 안에 우리만의 고유한 미감을 담아낸다.
흘러내리는 듯한 유연한 선들과 보일 듯 말 듯 하지만
무수한 흔적들의 집합으로 만들어진 표면의 질감은
달항아리라는 전통의 기형 위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오기 위한
긴 시간과 행위의 기록이기도 하다.
<작가노트 중>
김시영 Kim Syyoung
연세대학교 산업대학원 세라믹공학 석사
연세대학교 공과대학 금속공학과 학사
주요 개인전
2022 김시영 개인전_DISCOVERY, 학고재 아트센터, 서울
2020 김시영 오픈 스튜디오, 강원문화재단 선정, 강원
2019 김시영 개인전, 슈페리어 갤러리, 서울
2018 KIM SYYOUNG’S BLACK, KCDF갤러리, 서울
2017 김시영 개인전, 연세대학교 국가관리 연구원, 서울
2015 김시영 요변 흑자전, 칼리파갤러리, 서울
2014 흑유명가 가평요-검은 달항아리와 그 이후, 롯데갤러리 본점, 서울
2013 김시영 ‘비색 秘色 흑자전’, 우리그릇 려, 서울
2011 검은달항아리, 갤러리 얼 / 우리그릇 려, 서울
2011 흑유달항아리전, 갤러리 설악, 경기도
2010 화염을 칠하다, 세종문화회관, 서울
2009 경기으뜸이 10주년 기념 김시영 찻그릇, 통인화랑, 서울
2003 청곡 요변흑자, 경인미술관, 서울
1997 청곡 고려흑자, 롯데백화점 롯데화랑 잠실점, 서울
외 다수
주요 그룹전
2024 검고 뜨거운, 차고 빛나는: 김시영, 이상협 2인전, 갤러리밈, 서울
2024 묵상: 김시영, 박서보, 윤형근, 이배, 정창섭, 최명영 6인전, 신세계 갤러리 청담, 서울
2023 낙선재유 이음의 요량 (K-헤리티지 아트전), 창덕궁, 서울
2023 현으로부터 3인전, 보현재, 서울
2022 사물을 대하는 태도, 문화역 서울 284, 서울
2021 밀라노 디자인위크 한국공예관 [사물을 대하는 태도], Fuorisalone 푸오리살로네, 밀라노, 이탈리아
2021 Moon jar: a piece of happiness, 한 갤러리, 런던, 영국
2021 서울 공예 박물관 개관전, 서울공예박물관, 한국
2020 Kim syyoung youtube exhibition, The Scottish Gallery, 에든버러, 영국
2020 랜덤다이버시티, 우란문화재단 소장 연구전,서울
2019 신세계 백화점 영등포점 퍼스트 라운지 개점 기념전, 서울
2018 경계를 가다. 김시영도공. 이정섭목수 2인전 -신세계 갤러리, 부산-대구 릴레이전
2018 ILTM 한국관- PALAIS DES FESTIVALS DE CANNES, 깐느, 프랑스
2017 ILTM 한국관- PALAIS DES FESTIVALS DE CANNES, 깐느, 프랑스
2017 From Raw Material To Art Work, 김시영도공. 이정섭목수 2인전, 백악미술관, 서울
2017 Historias guardadas en el tiempo, 마드리드 주한문화원, 마드리드, 스페인
2013 해인아트프로젝트-해인사, 합천
2012 “여름-쉬어가는” 전 초대작가, 필리핀 한국문화원, 마닐라, 필리핀
2008 중국 국제도자기박람회 한국관, 경덕진
2001 김시영 PAUL BOUW 사발 2인전, 토아트 갤러리, 경기
1993 무궁화전, 도쿄, 일본
외 다수
수상
2019 대한민국 문화 훈장, 화관
2016 문화체육관광부, 강원도 지역 명사
1999 경기도, 경기으뜸이 (도자공예)
소장
빅토리아 앤 알버트 뮤지엄(영국), 기메 뮤지엄(프랑스), 스페인 수상(스페인), 일본 교통부(일본), 일본 관광청(일본), 태국 총리실(태국),
세가사미 그룹(일본), 우란 문화재단, 코오롱 그룹, 신세계 그룹, 광주 관요 박물관, 진천 국가대표 선수촌, 가평문화원 외 다수
이 상 협 William Lee
금속공예 학사졸업 -유니버시티 오브 런던 아트(켐버웰 컬리지)
파운데이션 오브 스컬프쳐 -엑시터 컬리지 오브 아트
주요경력
2023 올해의 공예상 창작부분
2005 M & J (셰피드 할람 대학교) 레지던시 입주작가
2002 안토니 곰리와 프로젝트 진행
전시경력
2023 공예트렌드페어 올해의 공예상 전, 코엑스, 서울
2023 한•중•일 공예전 화이부동, 전북예술회관, 전주
2023 청주공예비엔날레 초청작가
2022 물성의 이해 공예’디자인 공모전시 개인 작가 부문 선정
2022 단체전, KCDF 상반기 기획전 사물을 대하는 태도 展, 문화역서울284, 서울
2021 개인전, 바디프랜드 청담브랜드직영점, 서울
2021 서울공예박물관 개관특별전, 공예, 시간과 경계를 넘다, 서울공예박물관, 서울
2021 제 10회 서울국제조각페스타 2021, 예술의전당한가람미술관, 서울
2021 금도섭(金陶燮) 展, 갤러리 단디, 서울
2021 서울국제불교박람회, 서울
2021 아트 페스타 in 제주, 제주
2021 전남수묵비엔날레, 목포
2021 밀라노 한국공예전 All about attitude 展, 밀라노&대한민국
2021 2021 동아시아 문화도시 한·중·일 미래융합 페스티벌 티 카니발 展, 순천
2021 2021 청주시한국공예관 개관 20주년 기념 특별전, 청주
2021 2021 청주공예비엔날레 공예가 되기, 청주
2021 개인전, Eternal Glream 展, 갤러리 단디, 서울
2021 개인전, FLOW 展, 휴갤러리, 서울
2020 단체전, KCDF 하반기 기획전 컵 展, KCDF 갤러리 전관, 서울
2020 개인전, Tea and Silver 展, 갤러리 단디, 서울
2020 받치고 따르고 展, 갤러리 단디, 서울
2020 공예트렌드페어, 코엑스, 서울
2020 技.氣.器 展, 스페이스 금채, 서울
2019 한국 공예의 법고창신-수묵의 독백, 주일한국문화원, 도쿄, 일본
2019 이상협 금속조형전, 갤러리 조이, 부산
2019 한국 공예의 법고창신, 슈퍼스튜디오, 밀라노, 이탈리아
2018 제 9회 경남국제아트페어 (GIAF2018), 창원
2018 Korean Connection, 스코티쉬갤러리,에든버러, 영국
2018 BAMA2018 아트페어, 부산
2018 미다스의 뜰 현대 금장신구전, 갤러리 바움, 파주
2018 In The Spring 봄 기획전, 갤러리 조이, 부산
2018 Hand, Tool, Copper 展, 스트리트 갤러리, 서울
2018 가내수공 展, 갤러리 단디, 서울
2018 18회 실버트리엔날레, Inhorgenta, 뮌헨, 독일
2017 18회 실버트리엔날레, Museum Zons, 도르마겐, 독일
2017 ‘Forged', Galerie HAndwerk, 뮌헨, 독일
2017 18회 실버트리엔날레, Robbe & Berking Yachting Heritage Centre, 플렌스부르크, 독일
2017 18회 실버트리엔날레, Museum und Galerie im Prediger, 슈베비슈 그뮌트, 독일
2017 18회 실버트리엔날레, Museum voor Edelsmeedkunst, Juwelen en Diamant, 앤트워프, 벨기에
2017 KCDF 갤러리 초대전 공예희락, 서울
2017 BAMA2017 아트페어 초대전, 부산
2017 Metal Pottery, 갤러리단디, 서울
2016 18회 실버트리엔날레, Deutsches Goldschmiedehaus, 독일
2016 제1회 공평아트 위대한공예전, 공평아트갤러리, 서울
2016 레지나갤러리 공예 트렌드 페어, 서울
2015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초대전, 청주
2014 한국문화원, 런던, 영국
2013 디자인 데이 두바이, 가나스페이스 크로프트, 아랍에미리트, 두바이
2012 Inhorgenta, 뮌헨, 독일
2007-2011 골드스미스 페어, 골드스미스 컴퍼니, 런던, 영국
2011 SOFA 뉴욕, 미국
2011 11 콜렉트, 사치갤러리, 런던, 영국
2010-2011 BADA 엔틱 파인 아트 페어(페인 & 선), 런던, 영국
2010 콜렉트 페어(스코티쉬갤러리), 사치갤러리, 영국
2010 컨템퍼러리 브리티쉬 실버전(아스프리), 런던, 영국
2009 브리티쉬 실버 위크, 존 히긴스 컨템포러리 실버 (드 브루먼 디자인), 페인 & 선 옥스포드, 영국
2009 콜렉트 오브 사치갤러리, 런던, 영국
2008 개인전, 메탈갤러리, 런던, 영국
2008 아트 앤 엔틱 두바이, 아랍에미리트, 두바이
2007 콜렉트 페어(비숍랜드 에듀케셔널 트러스트), 빅토리아 앤 알버트, 영국
2007 트레져 오브 투데이, 피즈윌리엄 뮤지엄
2007 퍼시픽 림, 스코티쉬 갤러리, 에든버러, 영국
2007 런던 아트페어, 디자인 비즈니스 센터 (로져 빌클리프 갤러리), 영국
2006 트레져 오브 투데이, 버밍햄 뮤지엄 & 아트 갤러리
2006 런던 크레프트 페어, 서머셋하우스, 영국
2005 뷰티풀 브론즈: 스튜닝 실버, 콕 스트리트, 런던, 영국
2005 크래프트맨쉽 & 디자인 어워드 전, 골드스미스 홀, 영국
2004 크리스마스 전, 스코티쉬 갤러리, 에든버러, 영국
2004 인터내셔널 뉴욕 페어(메탈갤러리), 미국
2004 퓨쳐 맵, 런던 아트 갤러리, 런던, 영국
2004 졸업전, 메탈 갤러리, 영국
2004 뉴 디자인 쇼, 비즈니스 디자인센터
2004 크래프트맨쉽 & 디자인 어워드 전, 골드스미스 홀, 영국
2003 영 디자인 & 실버스미스 어워드, 빅토리아 & 알버트 뮤지엄, 영국
작품소장처
팸브로크, 캠브리지 유니버시티(영국), 그로서스 컴퍼니(영국)
에버딘 박물관(영국), 필라델피아 박물관(미국), 골드스미스 컴퍼니(영국),
빅토리아 앤 알버트 박물관(영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