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HIBITIONS

Kwon Dae Hun, Objemage(Objet+Image) : Postcard
M'VOID

Objemage(Objet+Image) : Postcard

Kwon Dae Hun

2024.10.23 ~ 2024.12.27
M’VOID는 통찰적 사유로 작품 세계를 다져가면서 동시대 미학적 가치에 질문을 던지는 중진 작가와 해외 작가의 전시를 기획하고 선보이는 프로그램입니다.
M’VOID is a program that plans and presents exhibitions of leading artists at home and abroad who question contemporary aesthetic values while strengthening their works with insights.

ABOUT

Kwon Dae Hun

권대훈의 포용적 조형론 : 구상(救像)하라!

심상용(서울대학교미술관 관장)

 

 

 

숲속에서 길을 잃다

 

‘Still in the Forest’, 권대훈의 2020년 개인전 주제였다. 숲속에서 길을 잃었던 이전의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길 잃은 숲에서 그는 잊을 수 없는 착시(錯視)를 경험했다. 형상들에 돌연 변형이 일어났고, 어떤 나무들은 사람의 형상이 되었다. 시지각이 심리상태와 긴밀히 연동되어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어떤 순간이나 사건은 그 인상이 너무 강렬해서, 우리의 마음과 영혼에 각인된다. 시각 경험도 크게 다르지 않다. 가슴과 영혼에 새겨져 삶 전체를 아우르는 미학의 형성에 결정적으로 관여한다.

 

권대훈은 다양한 출처에서 온 이미지를 연출된 빛의 상황 안에 위치시킨다. 새로운 맥락이 형성된다. 드로잉은 능란한 소조 솜씨로 빚어진 신체를 입는다. 그 위로 이미 조각의 일부가 된 이미지로서의 빛과 실제 조명에서 오는 빛의 이중의 접속이 있다. 오늘날 디지털화된 과정으로 대체되었거나 되는 중인, 모든 아날로그 과정들의 즐거운 복원이다. 발상은 빅데이터가 아니라 작가의 경험과 기억에서 오고, 대체로 땀과 노동 등 전통적인 소조나 회화의 과정을 거친다.

 

본다(seeing)’는 행위에 대하여: 정확히 하자. 생물학적 기관으로서 은 빛의 수용체, 매개체, 카메라의 렌즈와 다르지 않다. 그것만으로는 본다(seeing)’는 행위의 초보적인 이해조차 불가능하다. 빛의 농도를 조절하고, 기관의 표면에 상()을 맺히게 하는 과정은 본다는 사건 전체에서 극 초입에 지나지 않는다. 보는 행위는 마음과 영혼에 맞닿아 있다. 존재의 기원, 자연과 사물에 대한 선-이해 (-理解)까지 그것에 치밀하게 침투한다. 이 점에서 존재의 봄(seeing)은 비존재, 짐승의 그것과 그 뿌리부터가 다르다.

 

인간의 봄(seeing)은 대상과 대상의 이면, 대상 너머를 동시에 포괄하는 삼중의 인식행위고, 그로 인해 생각은 존재론적으로 공명하고, 마음은 정화와 심화의 과정을 밟아나가는 존재론적 사건이다. 사람들은 석양을 보면서 과거의 기억을 호출하고, 흐르는 강물을 보면서 스스로를 영겁의 시간으로 인도한다. ()을 본다는 것은 무엇인가? 가스통 바슐라르(Gaston Bachelard)에겐 근원에 다가서는 길이고, 꿈의 조건이었다. “물을 보는 것만으로는 물의 절대적인 모성, 생명의 최초의 환경임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물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꿈꾸지 않으면 안 된다.” 지적 깨달음, 감정적 몰입, 영적인 여정 그 어떤 것도 보는 행위와 무관하지 않다.⑴

 

시지각의 이토록 존재적이고 입체적인 특성을 인상주의자들의 빛 해석을 과소평가하는 근거로 이해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그 반대다. 예컨대 모네는 빛이 어떻게 자연과의 조화를 중시하고, 사물이 자율적인 존재가 아니며, 빛이 환희의 감정을 즉각적으로 일으키는가를 보여주었다. 권대훈은 당분간 렘브란트의 것보다는 인상주의자들의 시각적인 빛을 더 즐기는 것 같다. 대상과 빛 사이에서 일어나는 시지각적 티키타카를 즐거이 탐미한다. 그러니 이 세계에 등장하는 빛에 별스러운 주석을 다느라 너무 힘을 뺄 필요는 없다. 먼저 빛과 대상이 벌이는 게임을 즐기자. 빛이 인물상의 좌측 상단부를 때릴 때, 실제와 이미지의 첫 번째 착시가 야기되고, 우측 하단의 그림자에서 두 번째 착시가 일어난다. 이 이중의 착시는 서로 배척하지 않는 실재와 이미지의 놀이의 산물이다.

 

 

포용적 조각의 발판 마련하기

 

권대훈은 기억과 현재, 빛과 그림자, 실재와 가상, 조각과 회화의 경계를 두루 넘나든다. 기억은 그의 숙련된 손끝에서 육화(肉化)된다. 육화된 기억 위에서 이번에는 빛의 육화가 일어난다. 이중의 육화, 이것이 이 세계의 시각적 감성을 조율, 연출하는 조형적 문법이다. 이로부터 복수(複數)의 서사가 기지개를 켜며 몸을 일으킨다.

 

포스트모던 계열의 ()’이나 해체담론들과는 상반된 미()의 역학이다. 이 세계는 경계를 포용하고 유희한다. 기억과 현재, 실재와 이미지 사이의 줄타기, 회화와 조각, 드로잉과 소조는 서로의 보호자가 된다. 조각은 회화를 포용하고, 회화는 조각의 확장에 기여한다. -(win-win)이다. 2차원, 3차원 운운하는 장르 적대주의는 모더니즘의 터무니 없는 발명품일 뿐이다. 왜 그 유산을 대물림하는가. 권대훈은 사물과 빛. 실재와 이미지의 어느 하나에 매몰되거나 집착하지 않는다. 빛의 의미를 강조하려 물질의 하찮음에 밑줄을 그을 필요는 없다. 여기서 빛은 제임스 터렐(James Turrel)의 빛과 클로드 모네(Claude Monet)의 빛, 댄 플래빈(Dan Flavin)의 미니멀한 빛 가운데 하나를 택일하지 않아도 된다. 어느 하나가 정()이고, 다른 것들이 위()로 판명될 필요는 없다. 이것이 이 포용적인 세계의 본질이다.

 

마르셀 뒤샹과 개념주의 미학, 둘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는 기조가 남긴 폐해를 잊어서는 안 된다. 실재에 다가서기 위해 눈을 가리고, 땀이나 노동 따위는 단두대로 보내야 한다는, 한때는 꽤나 유효해 보였던 오류를 되풀이해선 곤란하다. 서구의 고대 철학에 기대어 구상(具象)을 추잡한 거짓으로 단죄했던 추상 미학이나 그 반대쪽의 동일한 편협함도 같은 맥락이다. 그 결과는? 알다시피 충분히 끔찍했다. 미켈란젤로는 돌로 다비드상을 만들었지만, 오늘날 LA 미술관은 우리에게 340 톤의 돌을 있는 그대로 제시하거나 쪼그려 앉아 대변을 보는 여경(女警)의 조각상을 제시한다. 탈과 해체의 담론들이 인식을 더 첨예하게 만들었던가? 그 반대다.

 

경계를 해체하자 미적 상대주의(aesthetic relativism)가 만연하게 되었다. 탈경계는 탈-기준, -미학, -예술로 거침없이 내달렸다. 이미지의 생명력을 상실하기에 이르기까지. 경계는 의미의 출처다. 의미를 때려 부수는 것이 아니라 재구성하는 것이 예술에 주어진 소임이다. 경계가 문제라고? 잘못 설정된 경계가 문제일 뿐이다. 눈과 개념, 조각과 회화는 둘 중 하나를 부정함으로써가 아니라, 각각의 고유한 개별성을 더 성찰하고 엮어냄으로써 완성된다. 새로움의 탐구와 실험은 변함없이 예술의 운명이지만, 더는 오해하지 말자. 부정과 파괴, 해체는 새로움이 아니라 구태로 물러나는 길일 뿐이다. 의미를 더 풍요롭게 함으로써 획득되는 새로움은 여전히 가능하며, 이것이야말로 예술의 미래가 되어야 한다.

 

시각예술은 이 세계에는 부재하는, 최상의 탁월성의 기준을 시지각적으로 제시하는 통로였다. 영감, 먼 곳에서 오는 빛, 숭고함, 은총..., 사적 견해의 차원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높은 수준을 향하는 힘인 백터(vector), 그것이 시각예술이었다. 하지만 탈과 해체의 쓰나미가 휩쓸고 간 오늘날 예술은 시니피에-시니피앙의 의미 고리 파괴하기, 실재를 혼돈의 기호들과 뒤섞기, 이미지를 뿌리 없는 사생아로 만들기의 아수라장이 되었다. 어리석음, 관점의 부재, 자의적인 추함의 전도사가 되었다.

 

권대훈의 조각은 조각을 재사유하는 것에 대한 천명이다. 조각의 전통과 비전통을 동시에 포용함으로써, 조각과 비조각을 하나로 엮음으로써 조각을 구한다. 실재와 이미지, 진실과 허구 둘 중 어느 하나도 부정되거나 해체되어야 할 것으로 인식하지 않기, 모든 비조각적인 것들에 대한 적대주의를 내려놓기로서의 조각이다. 허구를 진실 확장의 기제로 전용하는 것, 이미지를 수렁에서 구해내는 것, 즉 모더니즘의 독()이 해독된 조형성에 다가서기, 이것이 권대훈 작업의 방향이자 의미이다.

 

(1)가슈통 바슐라르, 꿈꿀 권리, 이가림 옮김 (서울: 열화당, 1983) pp. 74~75.

 

 

 

 

 

Kwon Dae Hun’s Inclusive Theory of Formative Art: Save the Forms (救像)!

Shim Sang Yong (Director, Seoul National University Museum of Arts)

 

Lost in the Forest

 

‘Still in the Forest’ was the theme of Kwon Dae Hun’s solo exhibition in 2020. It originated from his experience of having been lost in the forest once. In the very forest, he recalls that he experienced an unforgettable optical illusion. Suddenly, transformations occurred to forms, and some trees assumed the form of a human. This was when the artist realized that visual perception is intricately synchronized to one’s psychological state. Some moments or events exude such a strong impression that they are branded on our hearts and souls. Visual experience does not deviate too far from this it is carved in our heart and soul that it plays a pivotal role in forming an aesthetic that sustains one’s life.

 

Kwon Dae Hun locates images from various sources in the artificial situation of light. There, a new context emerges. His drawing wears a body formed by exceptional molding. We find a dual connection between the two lights one as an image that already became part of the sculpture on top of the molded body and another as an actual light from the lighting in the space. It is a joyful reinstation of all things analog, which has been replaced or is in the process of being replaced in today’s digitalized world. Thoughts originate not from big data but from the artist’s experience and memory, and become art through the process of traditional molding or painting that produces sweat and labor.

 

On the Act of Seeing Let me be very clear here. ‘Eye’ as a biological apparatus exists only as the receptor of light or as its medium. It is not different from the camera lens. But with this definition, we are denied even the very rudimentary understanding of the act of ‘seeing’. Adjusting the density of light and forming an image on the surface of the eye is only the beginning of the entire act of seeing. To see borders both the mind and the soul. Even the origin of existence and the transcendental understanding of nature and objects permeate the act. In this sense, the act of ‘seeing’ is fundamentally different in its essence from that of non-being or animals.

 

Our ‘seeing‘ is an act of triple perception comprising the object, the other side of the object, and what lies beyond the object. Through this act, thoughts reverberate ontologically and the mind becomes part of this ontological event that triggers purification and intensification. We summon past memories by looking at the sky during sunset and lead ourselves to eternal time witnessing the river flow. What does it mean to ‘see‘ water? To Gaston Bachelard, it was the path to our origin, the condition of our dreams: “The sole act of seeing water does not permit full comprehension of water‘s absolute maternity and it being the first environment of life. One must dream to understand water.”⑴ Any intellectual enlightenment, emotional immersion, or spiritual journey is free from the act of ‘seeing‘.

 

Such existential and three-dimensional characteristics of visual perception need not be understood as evidence of the impressionist underestimation of the interpretation of light. Quite the contrary. For instance, Monet illuminated how light emphasizes harmony with nature, how objects are not autonomous beings, and how light instantaneously evokes the emotion of joy. Kwon Dae Hun seems to enjoy the visual light of impressionist than the light of Rembrandt for the time being. He delightfully appreciates the interplay of visual perceptions between objects and light. Therefore, we need not exhaust ourselves by excessively annotating the light that appears in this world. Let us enjoy the game between light and object. When light illuminates the top left of the figure, the first optical illusion of the image and the real is created, followed by the second illusion in the shadow at the bottom right. This dual optical illusion do not exclude each other they coexist as the byproduct of the play between reality and image.

 

 

Establishing the Foundation of Inclusive Sculpture


Kwon Dae Hun traverses the boundaries between memory and the present, light and shadow, reality and the virtual, and sculpture and painting. Memory becomes ‘embodied’ at his hands. On top of the embodied memories occurs the embodiment of light. This dual embodiment is the formative grammar that controls and produces the visual sentimentality of this world. From this grammar, the narrative of plurality stretches and rises.

 

This is the dynamic of beauty, contrasted to the discourses of ‘post-’ or ‘deconstruction’ found in the postmodernist critical theories. This world includes and plays with boundaries. The balancing between memory and the present, and reality and image; painting and sculpture, drawing and molding become each others’ guardians. Sculpture embraces painting, and painting contributes to the sculpture’s expansion. It is a so-called win-win situation. Genre antagonism that fixates on the two-dimension or three-dimension is only a ridiculous invention of modernism. Why would anyone inherit that? Kwon Dae Hun is not confined to or obsessed with just a single thing of object and light, or reality and image. There is no need to underline the frivolity of material to emphasize the meaning of light. One needs not to choose between the light of James Turrel, Claude Monet, or Dan Flavin’s minimal light. Moreover, there is no use validating which one is true and which one is false; that is the essence of this inclusive world.

 

Let us not forget the harmful legacy of the idea that we must choose between Marcel Duchamp and conceptual aesthetics. We should not let the mistake recur, the mistake that once seemed quite valid, to close our eyes to get to reality and to send sweat and labor to the guillotine. The close-mindedness of the abstract aesthetics that relied on the ancient philosophy of the West to condemn the figurative as ugly falsehood, or of the opposite side, should be understood in the same context. And what was the consequence? We all know that the consequence was abysmal. Michelangelo created the David from stone, but, today, we find the LA museums presenting us with a rock amounting to 340 tons or a statue of a female police squatting and defecating. Have all the discourses of ‘post-‘ and ‘deconstruction‘ sharpen our perception? I must say it was quite the contrary.

 

As soon as we ‘deconstructed’ the boundaries, aesthetic relativism became more prevalent. Anti-boundary led to anti-standard, anti-aesthetic, and anti-art until we lost all vitality of image. Boundary is the source of meaning. It is not the vocation of art to hammer the meaning but to deconstruct and reconstruct it. Is the boundary a problem? No, it is the wrongly calibrated boundary the problem. Eye and concept, and sculpture and painting are completed by contemplating their unique individuality and relating them rather than denying one of the binaries. Art’s unchanging fate is to explore and experiment novelty, but let us not misunderstand any further. Denial, destruction, and deconstruction do not lead to the road of novelty but to mere retreat. By enriching the meaning, we still make possible novelty. This should be the future of art.

 

Visual art has been the pathway that visually and perceptively offers the highest standard of excellence absent in this world. Inspiration, light traveling from afar, sublimity, and grace vector, the power to lead us to the higher order of thoughts incomparable to personal opinions. Such was the essence of visual art. Now, however, we have been swept by the flood of ‘post-’ and ‘deconstruction’, leaving visual art as a chaotic marketplace of destroying the link of signification between the signified and the signifier, semiotically mixing reality with chaotic signs, or castrating images of its roots. It has become a purveyor of vacuity, lack of opinion, and arbitrary ugliness.

 

Kwon Dae Hun’s sculpture is a declaration of rethinking sculpture. By concurrently including tradition and non-tradition of sculpture, and by intertwining sculpture and non-sculpture as one, he saves sculpture. His sculpture is an effort to not perceive any of the binaries of reality and image, and truth and falsehood as subject to denial or deconstruction. It is a sculpture of forfeiting antagonism against all things non-sculptural. To appropriate falsehood as a mechanism to expand the truth, to save the image from its slough in other words, to cure the poison of modernism and take a step closer to formativeness. Such is the direction and meaning of the artistic endeavors of Kwon Dae Hun.

 

(1)Bachelard, Gaston. The Right to Dream. Translated by Lee Garim. Seoul: Youlhwadang, 1983, pp. 74-75

 

 

Kwon Dae Hun

 

EDUCATION

2004 영국 런던대 슬레이드 미술학교 MFA 졸업

1999 서울대학교 대학원 조소전공 졸업

1996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 졸업

1990 서울예술고등학교 졸업

 

AWARD

2011 더 잭 골드힐 조각상 수상 / 영국 왕립미술원 (The Jack Goldhill Award for sculpture, Royal Academy of arts summer Exhibition 2011)

2005 영국 왕립 조각가 협회전 (RBS Bursary Award)

2001, 2000 중앙 미술대전

 

EXHIBITION

 

Solo Exhibition

2021 철조망평화가 되다성이냐시오 성당로마 이탈리아

2020 Still in the Forest, 아뜰리에 아키서울

2019 Expo Chicago/ Exposure, 시카고 미국

2018 Objemage, 금산갤러리서울

         숲에서 길을 잃다아트센터 대담담양

2017 Objemage, KIAF 2017 Solo Project(부스전), 서울

         Chalna-enlightenment, Gallery by the Harbour, 홍콩

2013 Image installation, Korea Tomorrow,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부스전), 서울

2012 Chalna(찰나), 라흐마니노프스 갤러리런던 영국

          Flying Fish, Brain Factory, 서울

          Willowwacks, B-one 갤러리서울

2010 개인전一切有心造(일체유심조), 갤러리 비원 (B-one), 서울

2009 개인전라흐마니노프스 갤러리런던 영국

2005 포칼 개인전,  루틴 컨템포러리 미술과 조명 축제웨일즈 루틴 영국

2000 Gallery Pool, 서울

 

Group Exhibition

2023 서울조각회김세중 미술관서울

끝나지 않은 여행금산갤러리서울

자연과 도시의 경계를 거닐다강북문화재단서울

낯선 즐거움으로 초대이천국제조각심포지엄이천아트홀이천

2022 고찬규권대훈 2인전아트센터 쿠대전

          Mixed Media-unlimited path, 갤러리 BK, 서울

          서울조각회 43김세중 미술관서울   

          재현과 재연롯데갤러리인천

여행자 NOMAD, 권능권대훈 2인전아뜰리에 아키, 서울

The Soul of East and West, ARTA Gallery, 토론토 캐나다

2021  NFT Busan& nPlanet, nft, 부산 벡스코부산

2020 경계의 미학대추무 파인아트강릉

          41회 서울조각회김세중 미술관서울

2019 한국 현대 조각의 단면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서울

청주공예비엔날레 기획전청주

인식하는 자기다리는 자심승욱 권대훈 2인전갤러리 이배부산

리듬 사물공간서울조각회서울

Don’t call it a comeback, 아뜰리에 아키서울

4482-8244, 셀로아트서울

2018 아트아시아 특별전아트아시아 킨택스고양

SNU 빌라다르 페스티벌예술의 전당서울

서울조각회서울대학교 우석갤러리서울

+- , 갤럴리 비원서울

2017 수에뇨 339, 서울

Iconic Sculpture 7, 아트그라운드 헵타서울

2016 조각적 전회모란미술관경기

서울조각회조선일보미술관서울

Where am I? , UNC 갤러리서울

Alma_marter II, 가나아트센터서울

2015 Encounter/ the story begins with, 박여숙 갤러리서울

Alma_Marter, 가나 아트센터서울

Break Open,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우석 갤러리서울

The Memory of Europe, ART SPACE HOSEO, 서울

2014 Now, Here, Nowhere, 유중아트센터서울

With art, With artist!, 아트로드77, Adamas253 갤러리헤이리 파주

가을회상서울조각회전, Artspace H, 서울

한국현대미술의괘적2, 서울대학교 문화관서울

시시각각제주도립미술관제주

2013 Clifford Chance installation, Clifford chance at Canary Wharf, 런던 영국

RA Summer Exhibiiton 2013, Royal Academy of Arts, 런던 영국

White & White, Museo Carlo Bilotti, 로마 이탈리아

Limaginare, LIG 아트스페이스, 서울

한국 현대미술의 궤적서울대학교 미술관서울대학교서울

예술 영원한 빛예술의전당서울

조각광복에서 오늘까지독립기념관천안

2012 조각 무엇을 생각하는가?, 조선일보미술관서울

2011 써머 엑스비션로얄아카데미 오브 아츠런던 영국

몹쓸낭만주의아르코미술관서울

마법의 나라양평양평군립미술관 개관기획전양평

2010 눈먼자들의 도시보안여관서울

Primavere del bianco (Springs in white), 서울대 미술관서울

4482-2010 Utopia/ Dystopia: A Palace with Contemporary Views,

OXO Bargehouse, 런던 영국

SBS 투로로우 페스티벌오목공원서울

Present from the Past, The Korean Cultural Center, 런던 영국

2009 U.S.B, 한가람 미술관예술의 전당서울

Frieze Art Fair, Rachmaninoffs, 런던 영국

36 프로젝트아텔리에 구스타브파리프랑스

2008 지구의 빛, 2008 과학과 예술의 만남국립과천과학관과천

4482, OXO Tower Bargehouse, 런던 영국

LUX-(e), Galerie Vanessa Quang, 파리 프랑스

The others, St Marry's Old Church, 런던 영국

반응하는 눈: Digital Spectrum서울 시립미술관서울

London lit Plus 페스티벌, The Situation Mordern # 2, 런던 영국

00 Nature exhibition, Contemporary Art Project, 런던 영국

Electric Blue, Oxo Tower Barge House, 런던 영국

Form Art Fair, 런던 영국

2007 Arcadia, I-Myu Projects, 런던 영국

주 아트페어라흐마니노프스 겔러리런던 영국

4482, Korean Contemporary Artists in London, 런던 영국

Performance (Fold 07 출판식 이벤트), Tate Britain, 런던 영국

Cool Bits, 겔러리 선 컨템포러리서울

2006 당인리 문화 공장쌈지 스페이스서울

The event in London, The plum tree, 런던 영국

Betrayed by the Senses, 옥소타워 바지하우스, 런던 영국

ON, 프로젝트 스페이스 커버업런던 영국 

2005 영국왕립 조각가 협회 공모전, RBS 겔러리런던 영국

맥스 5 아티스츠 비디오 페스티벌(카페 겔러리 프로젝트), 사우스 파크런던 영국 

25, 익스포져 갤러리스완씨영국

2인전 (권대훈데이비드 헌), 라크마니노프스 겔러리런던 영국

Twenty to One, 카나리 워프런던 영국

2004 2인전(권대훈안강현) Playground of Camouflage, 아트 엣 킹글리코트 겔러리런던 영국

2003 Tune in, Drop out, 겔러리 원들바그스타드 스위스

2001 중앙미술대전호암아트홀서울

그들의 자리전구반포반포2동사무소, 서울

2000 서울 대학교 동창회 창립 50주년 기념전서울 시립미술관 서울

          남양주시 미술협회전남양주시청, 경기

          중앙 미술대전호암아트홀, 서울

1999 석사학위전서울대학교 박물관 현대미술전시실, 서울

          나주 국제 미술제동신대학교, 나주

1998 서울조각회전 , 한국문예진흥원미술회관 외

1996 야상조각전, 갤러리 사각, 한국

 


SELECTED WORK

Preparing for the exhib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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