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준비 중입니다.
민감한 콘텐츠 2
Lee Boram
M’cube is a program to discover and support young artists who explore experimental territories with a passion for novelty and challenge their limits.
ABOUT
민감한 콘텐츠 2
Sensitive
Contents 2
2003년부터 계속 비슷한 이미지들이었다. 피로 뒤덮이거나 팔∙다리가 잘려나간 몸, 울부짓는 얼굴, 산산조각난 건물의 잔해와 솟구치는 연기 등등. 2003년에는 이라크 전쟁이 있었고, 이후에도 전쟁과 테러는 여기저기서 끊이지 않았다. 그런데 20년이 지나고, 나의 일상과 작업에서 팔레스타인이라는 구체적인 지역이 중요해졌다. 가자는 사실 2003년부터 바라보았던 고통의 이미지들 사이에서 계속 목격되었다.
그래서 이 전시를 위한 글에서는 팔레스타인이라는 이름과 지금이라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나를 여기까지 끌고 온 것은 이미지들이다. 지난 10월 이후 나는 가자 학살의 장면들을 소셜미디어를 통해 보면서 ‘하트’를 누르거나, 저장하거나,
캡처하기 시작했다. 이 한 장 한 장의 이미지는 중요하다. 2024년 11월 10일 기준,
가자 학살 이후 현장에서 사망한 기자가 188명에 이른다.
그러니까, 이 이미지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현장에 남아있는 기자들과 고통 속에 간신히 살아있는 팔레스타인인들이 남겨놓은 현실의 조각들이다. 디디-위베르만에 따르면, 이미지의 힘은 그것들이 현실의 한 조각이라는 데서 온다. 이미지의 힘은 아주 미약하지만 사라지지 않는 힘, 잠재하다가 어느 순간 강하게 돌발하는 힘이다.
지난해 10월 이후,
내 소셜미디어 피드는 가자 지구의 장면들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가장 자주 보게 되는 ‘이미지 아닌 이미지’는 어둡게 가려진 ‘민감한 콘텐츠’였다.
자극적이거나 폭력적일 수 있다는 경고 후에 ‘보기’를 클릭해야만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다. 민감하다는 것은 설명이 필요하다. 어디에 민감하다는 것인지, 혹은 어디가 민감하다는 것인지. 콘텐츠가 민감하다는 것은 민감해야 하는 주체의 자리를 마치 눈속임하듯 바꿔놓은 것이다. 콘텐츠는 민감할 수 없다. ‘민감한 콘텐츠’라는 말은 실제로는 콘텐츠를 접하는 사람들의 반응이나 해석에 기초한 것이므로, 콘텐츠 자체가 절대적으로 ‘민감한’
상태일 수는 없다. 민감성을 콘텐츠에 직접 부여하는 것은 수용자들의 불편함이나 반응을 콘텐츠 속성으로 덧씌우는 일이며, 이를 통해 실제로 민감함을 느낄 주체인 수용자를 콘텐츠의 책임 주체로부터 제외시킨다. 대중 매체가 일방적으로 콘텐츠를 전달하던 시기, 타인의 고통을 담은 이미지를 보는 것이 소비적이고 비윤리적인 행위가 되었던 것처럼, 죄책감과 불편함이 이미지에 덧붙여졌던 것처럼. ‘민감한 콘텐츠’는 우리의 현실에서 이미지를 빼앗아간다.
이미지의 잔해 속에서 나는 현실의 조각들을 발견하고 싶었다. 과일 쥬서,
노트와 책, 플라스틱 박스, 여자아이 인형, 과자 봉지,
슬리퍼, 의자,
수술 장갑, 수건.
이 물건들은 학살 이전의 일상과 삶을 떠올리게 한다. 잔해 속에서 삶을 발견하는 것은 나에게 의미있는 일이었다. 흐릿하게나마 팔레스타인의 한 조각을 남기는 것.
2024.11.14. 이보람
SELECTED WORK
INSTALLATION VIEW
Preparing for the exhibi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