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ll of Peace
Moon Eunchae
M’cube is a program to discover and support young artists who explore experimental territories with a passion for novelty and challenge their limits.
ABOUT
작가노트
냉장고에서 꺼내 온 평화 한 조각
제주의 숲에 간 적이 있다. 빼곡한 나무들 때문에 숲 안에선 하늘이 보이지 않았다. 분명 낮이었는데 햇빛이 들지 않아 살짝 어둑했다.
그 때 저 멀리서 사슴 한 마리가 다가왔다. 어두운 숲 안이라서 내가 보이지 않는 건지 무척 가까이까지 사슴은 다가왔다. 이윽고 사슴은 나를 발견했고, 깜짝 놀란 듯 고개를 들고 나를 보았다. 나도 놀라서 사슴을 보았다. 그 순간은 고작 몇 초 정도 지속됐고 사슴은 곧 도망갔다. 하지만 나에겐 그 순간이 마치 억겁처럼 느껴졌다. 아마 그건 사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 감각을 뭐라고 명명할 수 있을까? 서로에게 오갔던 눈빛과 멀리서 들려오는 바람소리, 어스름하게 비추는 햇빛과 살짝 차가워진 공기. 우릴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이 마치 연극 속 무대 같고 우리는 그 위에 선 배우가 된 것 같은 착각. 그 때의 배신감, 또는 완벽한 평화.
그렇다. 어쩌면 그건 평화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건 순간이니까. 그 순간이 영원히 지속된다면, 그렇게 서로 영원히 바라만 보고 있을 수 있다면 그것보다 더 완벽한 평화가 있을까? 나에게 그림을 그리는 일은 순간을 영원으로 만드는 일이다. 무언가가 상하는 것을 막기 위해 그것을 냉장고에 넣어 놓듯이, 나는 붙잡을 수 없는 것을 붙잡기 위해 그림을 그린다.
캔버스 위는 나에게 식탁과 같다. 잘 닦은 뒤 깨끗한 식탁보를 깔아 놓는다. 화병에 꽃을 꽂아 놓고 반짝이는 식기들을 준비한다. 예쁜 접시를 일렬로 나눠준 뒤 그 위에 냉장고에서 꺼내 온 평화를 한 조각씩 담아 놓는다.
방금 냉장고에서 나온 평화는 꽤나 차갑다. 입 안에 넣으면 서걱거리며 이빨이 시리다. 하지만 곧 차가움은 사라지고 달콤함이 찾아올 것이다. 냉장고에서 한참 기다리고 있던 평화는 솜사탕처럼 녹아 내린다. 이윽고 사라진다. 사실은 도망갔으며 캔버스 위엔 잔상만 남겨 놓은 사슴처럼 말이다.
문은채 Moon Eunchae
2024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서양화
2020 이화여자대학교 서양화
개인전
2025 <Chill of Peace>, 갤러리밈, 서울
2인전
2024 <帰りは線路を歩いて来るからいい>, AIR3331, 도쿄
단체전
2024 <우리로부터 멀어지는 것들>, 도잉아트, 서울
2024 <What a Wonderful World>, 이대서울병원, 서울
2023 <시차>, buronzu gallery, 리에주 벨기에
2021 <白日夢>, 도잉아트, 서울
2021 <LETTER TO MYSELF>, 산울림 아트 앤 크래프트, 서울
2021 <SCOUT展>, 갤러리 이마주, 서울
레지던시
2024 AIR3331, 도쿄